美日韓 거쳐 야구 예능 에이스…이대은이 가장 되돌리고 싶은 순간은[이헌재의 인생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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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5월 20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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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은퇴 후 야구 예능을 통해 ‘야구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대은.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프로야구 선수 시절 이대은(35)은 항상 2%가 부족한 투수였다. 신일고를 졸업한 뒤 2008년 시카고 컵스와 계약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지만 7시즌 동안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렀고 끝내 빅리그 무대는 밟지 못했다.

2015년부터 2년간은 일본프로야구(NPB) 지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었다. 이대은은 첫해인 2015년 한국 투수 최초로 10승을 노렸지만 결국 9승(9패)에 머물렀다. 2년 차인 2016년에는 대부분 2군에서 지냈다. 2군 리그인 이스턴리그에서 10승을 거두며 다승왕에 올랐지만 1군에서는 거의 활약하지 못했다.

2019년 한국 프로야구에 진출해서도 딱히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2019년도 드래프트에서 2차 1번으로 KT 위즈 유니폼을 입었지만 2021년까지 3시즌 동안 7승 8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4.31의 평범한 기록을 남겼다.

이대은은 지난해 야구 예능 프로그램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이대은 인스타그램

이대은이 야구로 제대로 주목받은 건 출연 중인 한 야구 예능프로그램에서다. 2022년 1월 깜짝 은퇴를 발표한 이대은은 한동안 야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야구 예능 출연을 결정한 뒤 투수로 나와 시속 140km대의 빠른 공을 가볍게 뿌리기 시작했다. 시속 100km대 초반의 너클 커브도 자유자재로 던졌다. 프로 선수 시절 약점으로 지적됐던 제구와 경기 운영도 한층 좋아졌다.

지난해 이대은은 22경기에 출장해 2완봉승 포함 10승 2패를 거뒀다. 시즌 최우수선수(MVP)에도 뽑힌 그는 여러 가지 감정에 북받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침내 입은 뗀 그는 “예능 프로라고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야구했고, 내년에도 에이스 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021년 말 결혼한 이대은은 2022년 초에 깜짝 은퇴를 발표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KT 제공

사실 그의 빠른 선수 은퇴에 대해 의아해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은퇴 직전인 2021시즌에도 그는 3승 2패 9홀드 평균자책점 3.48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KT 팬들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하지만 은퇴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처음 KT에 입단할 당시부터 그는 팔꿈치와 허리 등 각종 잔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2020시즌에는 힘있게 공을 뿌렸는데 시속이 140km도 채 나오지 않았다. 충격에 빠진 그는 그때부터 은퇴를 마음 먹었다.

당시 그가 세운 목표는 한 번만 더 시속 150km를 찍어보자는 거였다. 그는 “시속 140km도 못 던지고 2군에서 은퇴하기엔 평생을 해온 야구가 너무 아쉬웠다. 그해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한 뒤 정말 열심히 운동을 했다”고 했다.

절치부심해서 맞은 2021시즌에 그는 목표로 했던 150km의 빠른 공을 되찾았다. 그해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시속 153km까지 나왔다. 목표를 달성한 그는 홀가분하게 유니폼을 벗었다.

“지금처럼 던지면 현역으로 복귀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사실 지금 기량으로 프로 1군 선수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야구 예능은 일주일에 한 번 투구를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항상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프로야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고 했다.

2015년 지바 롯데 입단 당시의 이대은. 동아일보 DB
2015년 지바 롯데 입단 당시의 이대은. 동아일보 DB

사실 그는 ‘모태 야구선수’다. 야구광인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면 무조건 야구 선수를 시킨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누나 둘에 이어 이대은이 태어나자 아버지는 곧장 야구 선수의 길을 걷게 했다.

이대은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오전 6시반이면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 가량 운동을 했다. 먹기 싫어도 정해진 양의 밥을 먹어야 했다. 잠은 무조건 9시에 잤다. 눈이 나빠질 수 있다며 컴퓨터 사용은 주말에만 허용됐다. 이대은은 “유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덩치가 크고 성격도 불같으셨다. 사춘기를 가질 겨를도 없었다”며 “어릴 때부터 꾸준히 운동하고 잘 먹으면서 좋은 신체조건을 갖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야구를 떠난 그의 몸이 망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은퇴 후 3개월 가량 그는 주로 집에서 지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거나 책상에서 컴퓨터 게임을 했다. 은퇴 당시 98kg였던 몸무게가 3개월 만에 13kg이나 빠져 86kg이 됐다. 프로 생활을 할 때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먹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지자 배가 고플 때만 먹었다. 따로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근육도 순식간에 빠져 버렸다.

이대은은 2015년 프리미어12 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동아일보 DB
이대은은 2015년 프리미어12 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동아일보 DB

그런 그를 다시 일으킨 게 바로 야구 예능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스타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운동을 해야 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그냥 예능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경기할 때만큼은 실전 그 자체다. 나 때문에 팀이 지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다”고 했다.

몸을 만들기 위해 그는 다시 억지로 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몸무게가 95kg 가량 나간다.

팀원들과도 일주일에 두 차례는 함께 모여 훈련을 한다. 개인적으로 이틀 가량은 피트니스센터에서 몸을 만든다. 공을 꾸준히 만져야 원하는 공을 던질 수 있기 때문에 동료인 신재영이 운영하는 야구 레슨장에 들러 불펜 피칭을 하기도 한다.

2008년 시카고 컵스 입단 시절의 이대은.  동아일보 DB
2008년 시카고 컵스 입단 시절의 이대은. 동아일보 DB

미국과 일본, 한국 프로야구와 야구 예능까지 거치면서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7년 동안 ‘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마이너리그 시절은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말도 안 통하고, 문화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정말 재미있게 야구를 했다.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향해 순수하게 부딪쳤기에 그랬던 것 같다”며 “만약 다시 고등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더라도 미국행을 택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외국인 선수 신분이다 보니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한국에서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이대은은 ‘마남 야구 선수’의 대표 주자였다. 늘씬한 키와 소년의 얼굴을 가진 그는 패션모델 같다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동아일보  DB
이대은은 ‘마남 야구 선수’의 대표 주자였다. 늘씬한 키와 소년의 얼굴을 가진 그는 패션모델 같다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동아일보 DB

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시기는 KT 입단 전 경찰청에서 야구를 할 때다. 경찰청에서 운동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17시즌 퓨처스리그(2군)에서 탈삼진 1위, 평균자책점 2위를 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다만 여가 시간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아무래도 군부대이다 보니 여가 시간이 딱히 할 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TV를 보면서 누워있곤 했는데 그게 패착이 된 것 같다”며 “눕는 자세는 근육에 상당히 좋지 않다. 1년여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다음해부터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야구의 하락세가 그때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대은은 래퍼인 트루디와 2021년말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함께 방송에 출연하곤 한다. 이대은 인스타그램
이대은은 래퍼인 트루디와 2021년말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함께 방송에 출연하곤 한다. 이대은 인스타그램

미남 야구선수에서 이제는 미남 방송인이 된 그는 야구 예능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방송과 유튜브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그 동안은 야구를 통해 살아왔지만 인생 2막은 야구를 벗어나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들에 도전하면서 보낼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자신이 직접 개발에 참여한 남성용 기능성 화장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대은은 “한 번 뿐인 인생인만큼 행복하게 살아보려 한다. 어릴 때부터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옷과 패션에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며 “래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아내(트루디)의 외조도 열심히 할 것”이라며 웃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프로야구#이대은#인생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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