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눈뜬 채 코 베이는 ‘다크패턴’도 조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4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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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패턴의 비밀/해리 브리그널 지음·심태은 옮김/344쪽·2만 원·아크로스

쿠폰을 사면 금액만큼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사이트에 가입한 적이 있다. 5000원짜리 쿠폰을 샀는데, ‘내 포인트’ 항목에 5000포인트가 아닌 1만 포인트가 들어 있었다. 무언가 이상해 구매 절차를 찬찬히 훑어봤더니 구매액 항목에 1만 원이 기본값으로 설정돼 있었다. 구매자가 다른 금액을 선택할 수 있기는 하지만, 회원 가입 등을 위해 이것저것 서둘러 체크하다 보면 기자처럼 무심코 넘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착각이나 실수, 비합리적 지출을 유도하는 ‘다크패턴(dark patterns)’을 규제하기로 했다. 관련 소비자 피해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다크패턴은 소비자가 속고 있는지 모르도록 기만하는 방식을 취한다. 영국 인지과학자인 저자는 2022년 유럽의회 연구를 인용해 웹사이트와 앱의 97%가 1개 이상의 다크패턴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크패턴은 온·오프라인, 업종, 사회적 지위 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예컨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선거자금 후원 포털은 후원 형태에 ‘매월 후원’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뒀다. 후원자들이 일시 후원을 선택할 수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매달 후원금이 빠져나가는 일을 당했다. 이 방식의 이득이 크다는 걸 눈치챈 트럼프 선거운동 캠프는 아예 트럼프의 생일에 후원금을 더 내는 사전 선택 옵션을 추가했다. 그리고 이런 기만행위가 잘 드러나지 않도록 후원 포털에서 애국적 메시지를 강조하고, 후원금 내용은 눈에 덜 띄도록 배치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출발 최소 2시간 전에 도착하는 게 좋다’는 공항 안내도 다크패턴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탑승 시간의 효율성이 중요하다면 굳이 보안검색대와 출국 라운지 사이에 수많은 매장을 입주시켜 놓고, 매장을 건너뛸 지름길도 제공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남는데 코앞에 매장이 즐비하다면 탑승객의 선택은 뻔하지 않을까. 생활 곳곳에 침투한 다크패턴의 실태를 파악하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다크패턴#매월 후원#다크패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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