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문화대혁명’ 오프닝부터 비판…넷플릭스 ‘삼체’ 어떻게 달라졌나 [선넘는 콘텐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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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저타이가 문화대혁명 당시 핍박받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예저타이가 문화대혁명 당시 핍박받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버러지를 근절하라! 모든 악귀를 쓸어버려라!”

1966년 중국 베이징 칭화대.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 예저타이(페리 영)가 고깔모자를 쓰고 홍위병에게 끌려 나온다. 남자 홍위병이 “물리학 수업 중에 상대성 이론을 가르치지 않았나?”고 소리친다. 예저타이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인데 입문 수업에서 안 다루겠나”고 받아친다. 여자 홍위병이 “아인슈타인은 미국에 가서 원자 폭탄 만드는 걸 도왔다”고 외친다. 예저타이의 부인이자 칭화대 물리학 교수인 사오린이 “반혁명적 빅뱅 이론을 가르쳤다”며 예저타이를 고발한다.

흥분한 수천 명의 청중은 “예저타이를 단죄하라!”고 외친다. 홍위병들이 잇따라 허리띠를 풀어 예저타이를 향해 휘두른다. 광기에 사로잡힌 홍위병들이 몰려나와 예저타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린다. 잠시 후 예저타이의 숨이 끊어지고, 홍위병들은 당황한 듯 그 자리를 뜬다.

문화대혁명은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으로 평가받는다. 넷플릭스 제공
문화대혁명은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으로 평가받는다. 넷플릭스 제공


● 첫 장면부터 ‘문화대혁명’
지난달 21일 공개된 뒤 넷플릭스 세계 시청 순위 1위(TV 부문·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른 드라마 ‘삼체’의 첫 장면이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끔찍함을 직설적으로 묘사한다. 제자와 부인에게 버림받고 끝내 살해당하는 예저타이의 모습을 통해 홍위병이 지식인을 핍박한 역사를 직시한 것이다.

특히 이 장면은 이후 예저타이의 딸 예원제(자인 쳉, 로절린드 챠오)가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지구는 인간이 지배해선 안 된다는 회의론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대혁명 당시 각계각층 지식인들이 무참히 죽은 역사로 반지성적 행동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반면 SF(공상과학) 소설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하고 900만 부 이상 팔린 중국 작가 류츠신이 2013년부터 연달아 쓴 원작 장편소설 ‘삼체’(전 3권·자음과모음)에서 이 에피소드는 첫 장면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1권 초·중반부에 이르러 7페이지 남짓하게 짧게 언급될 뿐이다.

예원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지구를 인간이 지배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제공
예원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지구를 인간이 지배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제공

왜 장면 배치가 달라진 걸까. 류츠신은 2019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소설도 홍위병 장면으로 시작하려 했지만 출판사가 검열을 우려해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중국 출판사는 이 장면을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이야기의 뒷부분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류츠신은 NYT에 “마지못해 (편집에) 동의했지만 소설이 달라졌다고 느꼈다”고 했다.

원작 소설에서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묘사는 짧지만 참혹하기 그지없다. 예저타이가 죽은 뒤 단상의 모습을 원작 소설은 “광란의 대회장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핏줄기만이 유일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붉은 뱀처럼 천천히 구불구불 기어가다 단상 끝에서 한 방울씩 아래에 있는 빈 상자 위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고 세밀하게 그려낸다. 예저타이의 부인 사오린이 집에 돌아간 뒤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를 내는 장면을 묘사하는 원작 소설은 부부의 연마저 끊어버린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

류츠신이 ‘삼체’를 쓴 것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류츠신은 “문화대혁명 때 밤에 총소리를 들었다. 도시를 순찰하는 붉은 완장을 찬 남자들로 가득 찬 트럭을 본 것을 기억한다”고 NYT에 말했다.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으로 바뀌던 문화대혁명이 류츠신이 ‘삼체’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삼체’는 중국의 참혹한 역사를 SF라는 장르적 특성 안에 품어낸 대작”이라며 “요즘 한국 SF에도 근현대사 등 역사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과 작가들이 필요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화대혁명 당시 지식인들이 처벌받던 모습. 넷플릭스 제공
문화대혁명 당시 지식인들이 처벌받던 모습. 넷플릭스 제공


● “원작자 허락 받고 각색”

‘삼체’ 공개 후 중국 내에선 반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드라마가 중국을 비하하는 데 사용됐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중국을 나쁘게 그린다”,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정치적 각색”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지난해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30부작 드라마 ‘삼체’가 더 낫다는 주장도 유행하고 있다. 이런 반발은 특히 중국의 젊은 ‘애국주의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넷플릭스가 원작의 심오한 개념을 단순하고 조잡하게 변형시켜 서양 영웅 스타일의 할리우드 스토리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원작자의 의도를 반영한 각색을 정치적이라고만 비난할 수 있을까. 실제로 ‘삼체’ 제작진은 원작자의 허락하에 각색했다. 또 원작 소설은 미국판에선 홍위병 장면을 맨 앞장에 배치했다. 그래서 이 장면의 각색은 미국판 번역자가 한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이다. 미국판 번역자이자 SF 소설가인 켄 리우는 2019년 NTY와의 인터뷰에서 “서사 중간에 묻혀 있던 역사적 회상을 끌어내어 소설의 서두로 바꾸자고 원작자에게 제안했다”고 회상했다.

넷플릭스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감독을 섭외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2010년 감독 데뷔한 증국상은 중국 영화계에서 주로 활동했다. 증극상은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대혁명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실제 문화대혁명을 겪은 사람을 인터뷰해 인간적이고 세세한 분위기까지 담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젊은 예원제(왼쪽)의 모습. 넷플릭스 제공
젊은 예원제(왼쪽)의 모습. 넷플릭스 제공

물론 류츠신이 원작에서 중국 체제를 오로지 비판한 것만은 아니다. 류츠신은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각종 인터뷰에서 직답을 피하곤 한다.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를 강조한 원작의 메시지는 동아시아적 문화의 특징을 강조한 것처럼 느껴진다. 또 원작은 중국을 미국만큼의 과학 강국으로 묘사한다. 중국 ‘SF세계’ 편집장인 야오하이쥔이 원작 서문에서 “최근 10년간 중국 문학에서 SF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미국 SF와의 비교를 동서양 취향 차이로 논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진전을 이룬 작품이 많이 발표됐다”고 자부심을 드러낸 이유다.

일각에선 예원제가 겪는 시련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인생과 엮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은 문화대혁명 당시 아버지인 시중쉰 부총리가 숙청되면서 하방한 바 있다. 오지에서 7년 동안 토굴 생활하다 공산당에 입당했다. 아버지 예저타이가 숙청당한 뒤 고생하다 외계인과의 소통을 주도하는 연구원이 된 예원제의 삶과 시 주석의 인생이 겹쳐보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엔 다양한 인종이 등장인물로 등장한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엔 다양한 인종이 등장인물로 등장한다. 넷플릭스 제공


● 다국적 캐스팅으로 이민자 문제 강조

드라마가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원작 소설은 중국만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드라마는 배경을 영국 미국 등으로 넓힌 것이다. 특히 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이민자 출신 배우를 조합한 것도 특징이다. 박진혜 자음과모음 편집부장은 “단순히 중국을 중심으로 두지 않고 드라마에 여러 인종이 등장하게 바꾼 점이 돋보인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이민자들이 피부색이나 비자 문제로 차별받는 장면을 넣어 이민의 문제를 강조한 점도 두드러진다. 이를 통해 외계인이 지구로 이민을 올 때, 지구인들은 이민자(외계인)를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확장했다. 드라마의 총괄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다양한 지역 출신의 배우들을 원했다. 외계인이라는 위협에 맞서는 한 국가만의 투쟁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 세계적인 투쟁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 다국적의 다양한 출연진을 캐스팅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옥스퍼드 동문 중 한 명인 오거스티나 살라자르(오른쪽·에이사 곤살레스)은 이민자를 대표한다. 넷플릭스 제공
옥스퍼드 동문 중 한 명인 오거스티나 살라자르(오른쪽·에이사 곤살레스)은 이민자를 대표한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가 원작보다 인간적 면모를 강조한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드라마는 다섯 명의 옥스퍼드대 동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며 이들의 우정을 강조한다. 원작에서 중국 과학자인 왕먀오가 홀로 맡았던 일종의 탐정 역할을 드라마는 다섯 명이 함께 맡은 것이다. 이를 통해 접근법은 신선하지만, 필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원작의 한계를 넘어선다.

다만 옥스퍼드 동문의 서사가 길어져 드라마가 지루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SF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거치는 각색 과정에서 세계관에 집중할지, 인간관계에 초점 맞출지는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드라마 시즌2가 세계관과 배경을 우주로 넓힌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라갈지, 옥스퍼드 동문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사를 창조할지 기대된다”고 했다.

‘삼체’ 원작 소설. 자음과모음 제공
‘삼체’ 원작 소설. 자음과모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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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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