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어요 멸망’ 언행불일치 지구인들의 인류 멸망 보고서 [책의향기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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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3월 18일 1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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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 지음/메디치/240쪽


언행불일치 현대인을 향한 어느 염세주의자의 뼈 때리는 일침이다. 입으로는 환경을 걱정하면서 정반대의 행동을 일삼는 지구인들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세이다.

어느 날 자전거를 사기로 결심한 작가, 자전거만 있으면 출퇴근길이 더욱 즐거워지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멋진 아빠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결심은 곧장 행동으로 이어져 마음에 드는 멋진 녀석 하나를 덥석 구매한다. 그런데 왜일까. 막상 눈앞에 있으니 타기가 싫다. 결국 비싼 돈 주고 구매한 새 자전거는 비좁은 현관에 방치된 채 쓸쓸히 낡아간다. 이 스토리,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환경 보호를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한 독자들이라면 자신과 똑 닮은 이야기를 보며 어디선가 나를 관찰해서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네’ 하며 살짝 작은 위안을 얻는다.

시종일관 삐딱한 태도를 유지하는 저자는 우리가 남들 몰래 꼭꼭 숨겨둔 부끄러운 속마음과 행동을 CCTV로 관찰한 듯 생생하게 포착하고, 콩트를 보는 것 같은 독특한 기법을 활용해 유쾌하게 그려낸다.

지구를 걱정하며 일회용품 대신 영영 썩지 않을 텀블러를 집에 쌓아둔 사람이라면 ‘마침내 멸망’이라는 은근한 해방감을 선사하는 이 도발적인 선언기를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 저자 소개
윤태진 작가는 언론사와 여러 기업에서 영상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해 해왔다. 여행사에서 일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한때는 영화감독을, 언젠가는 소설가를 꿈꾸며 웹소설을 연재했다. 이 책을 오로지 “환경을 보호하자”고 외치는 착한 에세이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작가가 채택한 소설적 기법과 책 곳곳에 삽입한 초단편 상황극과 콩트는 우리가 살아가는 부조리한 현실을 놀랍도록 재치 있게 표현해낸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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