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야만이 넘치던 20년前 그 시대, 날것 그대로 그렸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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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얼짱시대’ 박태준 작가
이번엔 ‘동갑’ 아빠 만나는 타임슬립
011폰, 사자머리, 잠실 포장마차 등… 3040세대 추억 소환하는 소재 가득
데뷔작 ‘외모지상주의’ 성공 거둬… 직원 120명과 작년 연매출 150억

웹툰 ‘얼짱시대’에서 아빠 시후의 모습(왼쪽 사진)과 아들 충일이 죽은 아빠의 폴더폰을 여는 장면. 박태준만화회사 제공
웹툰 ‘얼짱시대’에서 아빠 시후의 모습(왼쪽 사진)과 아들 충일이 죽은 아빠의 폴더폰을 여는 장면. 박태준만화회사 제공
“휴대폰 주인인데요. 어디세요?”

열여덟 살 충일이 아빠 박시후의 폴더폰을 열자 011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네 살 때 충일을 버리고 떠난 아빠가 무연고자로 세상을 뜬 직후였다. 그때 충일 앞에 이상한 광경이 펼쳐진다. 눈앞에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가 사라진 것. 그 대신 촌스러운 비니 모자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풍경이 나타난다. 당황한 충일 앞에 등장한 건 열여덟 살 시후다. 빨간색 아디다스 저지를 입은 시후의 모습은 충일이 사진으로 봤던 아빠의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박태준 작가가 2일 서울 강남구 박태준만화회사 사옥에서 신작 웹툰 ‘얼짱시대’ 속 한 장면이 띄워진 태블릿PC를 들고 있다. 
2003년 당시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장면이다. 박 작가는 “1988∼1997년을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좋아한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을 다룬 콘텐츠는 많지 않아 작품을 기획했다”고 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박태준 작가가 2일 서울 강남구 박태준만화회사 사옥에서 신작 웹툰 ‘얼짱시대’ 속 한 장면이 띄워진 태블릿PC를 들고 있다. 2003년 당시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장면이다. 박 작가는 “1988∼1997년을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좋아한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을 다룬 콘텐츠는 많지 않아 작품을 기획했다”고 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지난달 21일 연재를 시작한 웹툰 ‘얼짱시대’는 2023년에 살던 충일이 2003년으로 돌아가 동갑내기 아빠를 만나는 타임슬립(시간여행) 이야기다. 웹툰을 총괄 기획한 건 박태준만화회사(법인명 더그림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박태준 작가(39). 2일 서울 강남구 박태준만화회사 사옥에서 만난 박 작가는 왜 20년 전 이야기를 다뤘냐는 물음에 “낭만과 야만이 넘쳐나던, 사람들이 미쳐 있던 시대를 그리고 싶었다”며 웃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라 온 국민이 하나가 됐었죠. 허세와 혼란이 가득한 2003년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쇼핑몰 대표와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박 작가는 2014년 내놓은 첫 웹툰 ‘외모지상주의’로 인기 작가가 됐다. 한국어, 영어 등 9개 언어로 연재된 이 작품은 누적 조회 수가 91억 회에 이른다. 그는 2017년 회사를 차린 뒤 2019년 ‘싸움독학’ ‘인생존망’ 같은 웹툰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회사는 지난해 매출이 150억 원이고, 현재 직원은 120명이다. 박 작가는 “데뷔했을 땐 ‘옷 팔던 애가 그림 그릴 줄이나 아느냐’고 무시당했다”며 “‘외모지상주의’가 10년 가까이 휴재 없이 버티며 인정받게 됐다”고 했다.

신작 제목은 박 작가가 2009년 출연한 케이블 방송 ‘얼짱시대’에서 따왔다. 사람들이 호프집에 몰려가고, PC방에서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하는 모습은 30, 40대 독자의 추억을 소환하기 충분하다. 그는 “2003년에 나 역시 당시 유행하던 사자머리에,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닌 흑(黑)역사가 있다”며 “내가 겪은 이야기를 충실히 재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추억을 파는 서사인가 싶지만 네이버웹툰 신작 순위 1위를 기록하며 10, 20대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독자들 사이에선 “롯데월드타워 자리에 포차가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제게 1980, 90년대 이야기가 신선했듯 MZ(밀레니얼+Z)세대에겐 2000년대 이야기가 새로웠나 봐요. 아들이 젊은 아빠를 이해한다는 서사도 젊은 독자의 시선을 끈 것 같습니다.”

박 작가는 상명대 만화학과를 다니다 학비 부담으로 1학년 때 그만뒀다. 학창 시절 가난했고 만화책 읽기가 유일한 탈출구였던 그의 경험은 그의 여러 작품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폭력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는 “만화에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탈출구이자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대리 만족적 성향이 있다”며 “수위를 스스로 정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일단 그리고, 네이버웹툰과 협의해 적절한 수위를 정한다”고 했다.

“지금도 매일 10시간 이상 일한다”는 그는 “판타지물을 준비 중인데 이 작품 역시 10년 이상 그릴 것”이라며 “언젠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웹툰#얼짱시대#박태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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