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첫 전기차… 담금질 중인 스펙터를 미리 만나다[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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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케이프타운서 혹서기 테스트 진행… 전 세계서 단 11명의 기자만 초청해 시승
기술적 완성도 높여 올해 4분기부터 인도, 간결한 선과 형태만으로 날렵한 존재감 표현
2도어 쿠페 모델 역사상 첫 23인치 휠 사용…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특유의 분위기 강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혹서기 테스트 중인 롤스로이스의 첫 전기차 스펙터. 롤스로이스 제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혹서기 테스트 중인 롤스로이스의 첫 전기차 스펙터. 롤스로이스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 수도권에는 눈까지 내린 1월 말.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약 24시간의 여정 끝에 비행기가 도착한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이었다. 남반구에서도 끝자락에 있는 케이프타운은 한낮 기온이 영상 30도를 넘나드는 한여름이다.

공항에서 다시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프란스후크(Franschhoek)다. 고온다습한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질 좋은 포도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어서, 와이너리가 많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남아공 방문의 목적은 와인 체험은 아니다. 롤스로이스의 첫 양산 전기차, 스펙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스펙터는 아직 완성된 상태는 아니다. 롤스로이스는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스펙터의 혹서기 테스트를 하고 있다. 혹서기 테스트는 스펙터를 담금질하는 다섯 단계 중 세 번째 단계다. 지난해에는 스웨덴 아리에플로그에서 혹한기 시험을, 지중해 연안에서는 현실적 주행 환경과 트랙에서의 시험을 마쳤다.

남아공에서의 테스트는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북부 지역에서는 영상 50도를 넘나드는 덥고 건조한 상황에 노출시키고, 남부 지역에서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차의 변화를 살펴보고 기술적 완성도를 높인다. 남아공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전체 테스트의 약 80%가 마무리된다. 남은 두 단계에서는 그동안 경험한 환경에 다시 투입해 보완한 부분을 종합적으로 재평가하고, 마지막 마무리를 거쳐 완성된다. 스펙터는 올해 4분기부터 소비자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시험제작한 차는 2년에 걸쳐 250만 km가 넘는 거리를 달리고, 400년 이상의 시간에 해당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친다. 전 세계 소비자들의 요구를 고루 충족하기 위해, 다양한 환경에서 차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보완하기 위한 데이터를 얻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까지 스펙터가 시험주행한 거리는 200만 km가 넘는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동안에도 스펙터를 다루기는 아주 쉽다. 롤스로이스 제공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동안에도 스펙터를 다루기는 아주 쉽다. 롤스로이스 제공
롤스로이스는 한창 개발 중인 스펙터를 먼저 경험해볼 수 있도록 전 세계에서 필자를 포함해 단 11명의 기자만 초청했다. 미하르 아요비 롤스로이스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시승에 앞서 “스펙터는 2단계 테스트를 마친 시점에서 전체 테스트의 60%가 진행된 상태”라며, 기자들에게 “좋은 차를 더 낫게 만드는 과정인 만큼, 차를 타고 느낀 점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기자들을 기다리는 스펙터는 지난해 10월 공개된 모습 그대로다. 크롬 장식이 들어갈 차체 일부에 회색 필름을 입히고 도어에 시험용 차라는 것을 알리는 글씨를 붙여 놓았다는 점만 특이할 뿐이다. 간결한 선과 형태만으로 존재감을 표현한 외부는 묘하게도 날렵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롤스로이스가 앞서 내놓았던 팬텀 쿠페나 레이스와도 분위기가 달라, 새로운 세대의 롤스로이스임을 실감할 수 있다.

스펙터는 롤스로이스의 첫 순수 전기차일 뿐 아니라 세부적으로도 롤스로이스 차에서 처음 선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100년 가까운 롤스로이스 2도어 쿠페 모델 역사에 처음으로 쓰인 23인치 휠이다. 이처럼 큰 휠은 차를 낮고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쿠페 특유의 분위기를 한층 더 강조한다.

너비가 1.5m에 이르는 코치 도어도 역대 롤스로이스에 쓰인 것 가운데 가장 크다. 2도어 쿠페면서도 뒷좌석에 타고 내리기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 열리는 부분을 넓게 만든 것이다. 도어 조작도 불편하지 않도록 전동화되어, 도어 핸들을 당기면 부드럽게 열리고 운전석에 앉아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조용히 자동으로 닫힌다.

스펙터는 전기차 시대에도 롤스로이스의 가치와 명성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롤스로이스 제공
스펙터는 전기차 시대에도 롤스로이스의 가치와 명성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롤스로이스 제공
또 하나의 ‘롤스로이스 최초’는 디지털 계기판이다. 디자인은 전통적이고도 우아한 아날로그 스타일이면서도 전기차에 특화된 여러 정보를 좀 더 효과적으로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계기판이 쓰였어도 실내 분위기는 익숙한 롤스로이스의 모습 그대로다. 수많은 기술이 담겨 있지만 여러 장치는 간결하게 정리해 필요한 기능만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했다. 차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전기차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스펙터는 ‘매직 카펫 라이드’라고 하는 롤스로이스 특유의 조용함과 부드러운 주행 느낌이 더 두드러진다. 큰 차체에 대용량 고전압 배터리를 달아 무겁지만, 전혀 부담 없이 원하는 만큼 속도를 높일 수 있고 매끄럽게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정도를 달리해도 속도가 높아지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가속감은 매우 부드럽다. 특히 전기 모터와 회생제동 장치의 강력한 힘이 위화감을 주지 않도록 세련되게 조율한 점이 인상적이다.

길이가 5.5m에 이르고 너비는 2m가 넘지만,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동안에도 차를 다루기는 아주 쉽다. 특히 리어 휠 스티어링 시스템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 느린 속도로 달릴 때 차의 회전반경을 줄여 커브를 돌 때 편리하고, 빠른 속도에서는 안정감을 높인다. 스티어링 휠을 돌릴 때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첨단 기술로 전자제어 되는 플래나 서스펜션 덕분에 커브에서도 좀처럼 기울지 않는 차체와 어우러져 운전자에게 든든함과 편안함을 함께 전한다.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 성격과 전기 동력계의 궁합은 훌륭하다. 롤스로이스 제공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 성격과 전기 동력계의 궁합은 훌륭하다. 롤스로이스 제공
실내의 조용함은 더할 나위 없다.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 성격과 전기 동력계의 궁합은 훌륭하다. 워낙 소음을 줄이는 데 많은 공을 들이는 롤스로이스지만, 엔진과 같은 태생적 소음원이 없는 전기차의 기술적 특성을 고려해 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도록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차를 모는 동안 동승한 조그 분더 스펙터 프로젝트 리더는 “그런 부분을 조율하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일 중 하나”라고 한다. 차체 아래에 설치한 고전압 배터리가 방음재 역할을 하는데도 여전히 700kg 가까운 무게의 방음재를 쓴 이유다.

시장이 허락하는 한 V12 엔진을 고수하겠다고 이야기한 롤스로이스가 전기차를 내놓은 이유가 궁금했다. 현지에서 만난 토스텐 뮐러 오트보쉬 롤스로이스 CEO의 답은 명쾌했다.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펙터를 개발하면서 세운 원칙은 ‘롤스로이스가 먼저, 전기차는 그다음’이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많은 롤스로이스 소비자가 이미 전기차를 경험했고 갖고 있습니다. 전기차를 쓰는 환경에서도 소비자는 롤스로이스만의 특별함을 원합니다. 전기차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롤스로이스라서 사는 거죠”라고 밝혔다. 아직 100% 완성된 차가 아니라고 해도, 스펙터는 지금 상태 그대로 내놓더라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롤스로이스는 이미 풍요와 여유, 특별함과 완성도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첫 전기차인 스펙터를 개발하면서 철저한 테스트를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117년 브랜드 역사가 쌓아올린 가치와 명성을 전기차 시대에도 이어 나가갔다는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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