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과학성’ 밝히려던 외솔 최현배 선생…후손이 그 꿈 이루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6일 13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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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동안 변치 않는 한 가지를 남겨라.”

일제로부터 우리말을 지켜낸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은 생전 그의 손자인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69)에게 이런 친필을 남겼다.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연구하고 한글날을 제정한 외솔은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딴 과학적인 문자”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음성의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려 시도했던 선구자였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생전 남긴 한글교육 관련 저서. 외솔은 50여 권에 달하는 한글교육서 등을 남겼다. 독립기념관 제공
외솔 최현배 선생이 생전 남긴 한글교육 관련 저서. 외솔은 50여 권에 달하는 한글교육서 등을 남겼다. 독립기념관 제공

외솔의 손자인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69)은 “할아버지가 남긴 과제를 푸는 것이 일생 동안 제가 남겨야 할 변치 않을 한 가지”라고 말했다. 이비인후과 의사이기도 한 그는 4일 오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할아버지는 발음기관을 본 딴 한글의 과학성이야말로 우리말이 가진 힘이자 강력한 뿌리라고 말씀하셨다”며 “외솔의 후손인 나는 그보다 더 정확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할아버지가 지켜낸 우리말의 뿌리를 잇고 싶다”고 했다.

이비인후과 의사인 그가 할아버지를 쫓아 훈민정음을 연구하기 시작한 건 2012년 무렵이다. 외솔회 이사장을 맡아 조부가 1941년 처음 출간한 ‘한글갈’을 처음 접하면서다. 외솔은 이 책에서 중성자(·, ㅡ, ㅣ)는 하늘과 땅,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떠 만든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본 딴 것이라고 해석하는 기존 한글학계 견해와 달리 중성자 역시 발음기관을 본 딴 상형문자일지 모른다는 새로운 의문을 제기했다.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발음기관의 구조를 연구해온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 글자를 발음할 때 발음기관의 모양을 컴퓨터 단층 촬영(CT) 등 음성의학적인 방식으로 분석한다면 할아버지가 품었던 의문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은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신의 병원에서 조부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 1941년 출간한 ‘한글갈’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은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신의 병원에서 조부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 1941년 출간한 ‘한글갈’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최 회장이 최근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지에 발표한 ‘중성자 제자해에 대한 음성언어의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에는 2015년부터 6년간 이어온 연구의 결과가 담겼다. 이 논문에서 최 회장은 중성자(·, ㅡ, ㅣ)를 발음할 때 구강과 인후두강의 모습을 CT로 촬영해 “중성자 역시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딴 상형문자”라고 주장했다. 1941년 외솔이 저서 ‘한글갈’에 품었던 의문을 그의 손자가 밝혀낸 것. 그는 “내년에는 자기공명영상(MRI) 기법으로 발음기관을 연구해 지금보다 더 정확한 분석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카이스트(KAIST)와 협업해 우리 글자를 말할 때 발음기관의 모양을 3D로 입체화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음성의학, 컴퓨터공학을 융합한 저만의 방식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밝혀내고 싶습니다.”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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