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보러 호주 가서 사람 보고 온 얘기[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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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즐랜드 자매로드/황선우 김하나 지음/256쪽·1만6000원·이야기나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엔데믹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해외여행을 떠나기엔 조금 부담스럽다. 비행기와 숙소 값은 치솟고, 해외여행 중 코로나19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된다. 전 세계에서 유행 중인 원숭이두창이 국내에도 유입됐다는 소식엔 다시 공항 문이 닫힐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슬슬 생긴다.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은 가득하지만 쉽게 떠나진 못할 때라 그런지 여행 에세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2019년 두 여자의 동거 생활을 다룬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위즈덤하우스)로 유명한 두 작가가 쓴 여행 에세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호주 퀸즐랜드를 여행한 이야기지만 지난달에 출간됐다. 엔데믹 시대 해외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겨냥해 시기를 조율해 출간한 것일까. “일상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연기하는 시간”을 퇴고에 쏟은 만큼 여행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 점이 매력적이다.

책은 호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해변을 거닐며 한국과 호주 사람들의 몸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한다. 한국 해변엔 이른바 ‘몸짱’들이 가득하다. 헬스장에서 잘 가꿔진 몸이다. 반면 호주 해변엔 사람들이 관리되지 않은 몸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배가 나와도 살이 처져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동네 축제를 방문해선 사람들의 자유로움에 놀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신들이 기른 농작물을 든 채로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휠체어를 타고 나온 장애인도 많았다. 오와 열을 맞춰 행진하는 군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들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젊고 아름다운 존재만이 무대에 오르는 한국과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는 호주의 차이를 실감한다. 저자들은 호주에 “꽃을 보러 왔다가 사람들을 봤다”고 고백한다.

가장 인상 깊은 건 저자들이 호주 브리즈번 공항을 떠나기 전 본 한 문구다. 출국장엔 ‘Keep the sunshine’(햇살을 간직해)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호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반영한 작별인사였다. 코로나19로 힘들었던 2년을 버티게 한 건 이 문구였다는 저자들의 말이 이해간다.

요즘 서점을 가보면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현지 모습을 반영해 낸 여행 가이드북 개정판이 눈에 많이 띈다. 정책과 상황이 급변할 때 여행 정보처럼 중요한 게 없는 만큼 가이드북은 중요한 준비물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날 때 그 나라에 대한 여행 에세이도 하나씩 들고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못 보고 놓칠 법한 시각을 여행자에게 선사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나부터 호주행 비행기 표 가격을 알아봐야겠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엔데믹#코로나#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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