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세 여동생이 본 빈센트 반 고흐를 읽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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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누이들/빌럼 얀 페를린던 지음·김산하 옮김/352쪽·2만5000원·만복당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남동생 테오는 각별한 사이였다. 테오는 괴팍하고 충동적인 고흐에게 모두가 등을 돌렸을 때 고흐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빈센트의 임종을 지킨 것도 테오였다. 빈센트가 죽고 불과 6개월 뒤 테오 역시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빈센트의 뒤를 따라갔다. 둘은 같은 장소에 나란히 묻혔다.

빈센트와 테오의 관계는 숱하게 조명됐지만 빈센트에게 세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저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고흐의 세 여동생 안나, 리스, 빌레민과 빈센트가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들을 바탕으로 빈센트의 삶을 재구성했다. 반 고흐 가문 자녀들은 일과 학업을 위해 각각 런던과 파리, 브뤼셀 등으로 흩어진 뒤 서로 마음이 담긴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세 여동생과의 관계를 통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빈센트는 자신처럼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았고 사회의 관습과 체제에 반감이 컸던 막내 여동생 빌레민과 가장 가까웠다. 둘은 종교와 미술, 문학에 심취했다는 공통점도 지녔다. 빈센트가 빌레민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불안했고, 동시에 가족에게 의지하고 싶어 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사랑하는 동생아… 네가 겪었다고 언급한, 지금 내가 다시 경험하고 있는 이 우울한 상태일 때는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우리처럼 기질적으로 불안한 사람을 지탱하는 데에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야.’

빈센트는 보수적이었던 목사 아버지를 잘 따랐던 첫째 여동생 안나와는 끊임없이 반목했다. 안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빈센트 때문이라고 여겼다. 아버지 장례 후 안나는 빈센트에게 집을 나가라고 압박했고, 작업실로 거처를 옮긴 빈센트는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안나는 자기가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은 거다.’

빈센트가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은 예술가가 아닌 인간 빈센트 반 고흐의 모습을 보여준다. 테오 외 가족들과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살았던 빈센트가 평생 어머니와 막내 여동생 빌레민을 그리워했다는 대목은 가슴 아프다. 빈센트는 사망 한 달 전인 1890년 6월, 빌레민에게 ‘언젠가 정말이지 네 초상화를 그려 보고 싶구나’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가 그토록 그리고자 했던 빌레민의 초상화는 못 다 이룬 꿈으로 남았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반 고흐의 누이들#세 여동생#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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