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 곡으로 쓴 ‘추리 랩’에 빠져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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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힙합 1세대 래퍼 ‘피타입’
정규 5집 ‘Hardboiled…’ 발매
하드보일드 소설가 오마주 가득
‘노인과 바다’ 산티아고도 등장

18일 만난 래퍼 피타입은 “디테일 집착이 심한 내가 처음으로 신작을 속전속결, 일필휘지로 만들었다. 하루에 18시간씩 창작에 매달려 녹음까지 5주 만에 해치웠다”고 말했다. 피리부는사나이 제공
18일 만난 래퍼 피타입은 “디테일 집착이 심한 내가 처음으로 신작을 속전속결, 일필휘지로 만들었다. 하루에 18시간씩 창작에 매달려 녹음까지 5주 만에 해치웠다”고 말했다. 피리부는사나이 제공
한국 힙합 1세대 래퍼 피타입(본명 강진필)이 7년 만의 정규앨범인 5집 ‘Hardboiled Caf´e’(18일 발매)로 돌아왔다. 파격적 작품이다. 랩으로 쓴 추리소설이기 때문이다. 직접 쓴 이야기를 바탕으로 20개의 곡을 창작했다. 하드보일드 소설가들에 대한 오마주도 가득하다.

18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피타입은 “‘안녕, 내 사랑’ ‘Big Sleep’ ‘Kiss Me Deadly’ 같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깨끗하고 밝은 곳’ 등을 노래 제목에 썼다”고 말했다.

미키 스필레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립탐정 마이크(Mike) 해머는 등장인물 ‘마이크(MIC) 더 해머’로 변용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주인공 산티아고도 나온다. 9번 곡 ‘For Sale, My Rhymes, Never Used’ 역시 헤밍웨이에 대한 헌사.

“헤밍웨이가 ‘단 여섯 단어로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는가’란 내기에 한 답으로 알려진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판매 중: 아기 신발, 신지 않음)’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여섯 글자마다 방점을 찍어놔…’로 시작하는 이 곡 가사에 대해 피타입은 “1절의 모든 글자를 12열 종대로 정렬해 이상(1910∼1937)의 ‘오감도’처럼 보이도록 의도했다”고 말했다.

작품 속 피살자는 ‘하드보일드 카페’ 사장 신디다. 그 카페 단골 산티아고, 무명 가수 마이크 더 해머, 방랑자 빅 캣까지…. 1인 4역을 하는 피타입의 유려한 중저음 랩은 비밀스러운 플롯에 매캐한 안개를 드리운다. 신디의 내레이션은 영화 ‘코코’ ‘드래곤 길들이기’로 유명한 성우 김현심 씨가 맡았다.

피살자 신디는 ‘힙합 신(scene·힙합계)’을 상징한다. ‘힙합 신은 살아있는가?’가 숨은 주제인 셈. 피타입은 “나에게 힙합은 떳떳함, 솔직함 같은 태도를 바탕으로 한 문화이자 삶의 방식이며 그걸 공유하는 커뮤니티”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 신을 주도하는 건 팬덤뿐인 것 같아요. 팬덤은 아티스트 활동의 원동력이지만 만약 그게 신의 전부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2019년 피타입은 자신의 왼팔에 이런 문신을 새겼다. ‘오늘 난 옛날의 나에게 떳떳한가?’ 그의 곡 ‘광화문’(2015년)의 가사 일부다. 한국 힙합 역사의 절대 명곡 ‘돈키호테’를 담은 데뷔앨범 ‘Heavy Bass’(2004년) 이래 피타입은 꾸준히 신을 지켜왔다. 그는 “20년간 래퍼로 산 강진필의 내면이 등장인물의 면면에 얽혀 있다”고 귀띔했다.

산티아고, 더 해머, 빅 캣…. 아니면 신디 자신? 과연 이 판의 범인은 누구일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한국힙합 1세대 래퍼#피타입#추리 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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