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低성장 두려워 말라, 더 살 만한 세상이 온다

전채은 기자 입력 2021-09-11 03:00수정 2021-09-1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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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다운/대니 돌링 지음·김필규 옮김/568쪽·2만9000원·지식의날개
저자는 “젊은 인구가 급감하는데도 부동산 인플레이션이 큰 한국의 경우 다가오는 ‘슬로다운’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현상이 불안정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당신이 속도를 계속 높이고 있는 열차 위에서 평생 살았다고 가정해 보자. 갑자기 열차에 제동이 걸리는 걸 느낀다. 열차는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지만 예전처럼 무서운 속도로 달리지는 않는다. 당신은 “열차가 다시 속도를 낼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기대감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느려진 열차가 훨씬 안전하고 편안할 것”이라고 다독인다.

저자는 세계의 인구, 경제, 기술 등 사회를 구성하는 전반적인 요소들의 성장속도가 더뎌졌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 인구학자들은 세계 인구가 매년 최소 2%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 정도 증가율은 전쟁이 일어났거나 천재지변이 있었던 곳에서나 드물게 발견될 뿐이다. 일본의 경우 연간 인구증가율이 1950년 2%에서 1958년 1%, 1986년 0.5%로 점차 줄다가 2012년부터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2010년 말 미국 주택시장은 회복되는 듯했지만 2011년 붕괴됐다. 2012년과 2013년 미국 주택경기가 소폭 회복됐지만 다시 무너졌다. 2018년 3분기 미국 주택시장 대출액은 9조 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이는 2008년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2019년부터 미국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중개업자들은 향후 집값 폭락에 대비하고 있다.

산업기술 분야의 발전만큼은 눈부시다는 생각도 착각이다. 테크 기업들은 스마트폰이 접히고 노트북이 얇아지며 세탁기 위 건조기가 합체된 것을 엄청난 혁신인 양 발표하지만 이는 전화기, 컴퓨터, 세탁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에 비하면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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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자는 모든 분야에서 성장을 멈춘 세계에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거라고 주장하는 걸까. 사실은 그 반대다. 지난 100여 년간 세계에서 벌어진 폭발적 성장은 인류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인류는 수천 년간 아주 느리게 살아왔고, 수백 년에 걸쳐 비슷한 삶의 방식을 지속했다. 느려진 열차는 디스토피아가 아닌 오히려 ‘정상 상태’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인구 증가 속도가 느려지면 빈부 격차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많은 인구를 기반으로 한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지 못하면 독과점 대기업들이 경제를 좌우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에 밀린 낙오자들은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는 효율성 우선의 논리도 폐기될 것이다. 또 자그마한 변화를 혁신이라 주장하는 제품 대신 더 오래 쓸 수 있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며 폐기물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면 소비 수준의 향상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속도가 느려져 부모와 자식 세대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게 나쁘기만 할까. 가족이나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라면 이는 분명 축복일 것이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슬로다운#주택시장#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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