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년 전 슈베르트, 2021년 평창에서 ‘재생’되다

평창=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8-03 13:34수정 2021-08-03 14:1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소프라노 홍혜란과 남성 중창단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D.920을 노래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7월 28일 개막한 제18회 평창대관령음악제의 테마는 ‘산(alive)’이다. 1일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열린 공연 제목은 ‘재생(再生·revive) 1’이었다. 재생이란 죽은 것이 삶을 입어 다시 태어남을 뜻한다. 연주를 기록했다가 다시 듣는 것도 재생(playback)이다. 음악이 악보에 기록됐다가 연주되는 순간마다 작품은 다시 태어나는 기적을 맛본다.

빈 중심가 투흘라우벤의 1828년 3월 26일은 1일 평창에서 재생되었다. 슈베르트의 작품만을 공연했던 193년 전 빈 악우협회 콘서트 프로그램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주로 ‘하우스 콘서트’로 열렸던 슈베르티아데(슈베르트 애호가들의 작은 콘서트)의 확대판 격이었다. 슈베르트의 혼령이 지상에 있다면 기쁘게 감상했을 것이다.

날씨는 슈베르트의 짧은 삶 만큼이나 순조롭지 않았다. 빗줄기가 뮤직텐트를 때리는 소리가 커지고 작아지기를 거듭했다. 피아노3중주 2번 연주 중에는 뇌성이 울렸다. 실내악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알펜시아 콘서트홀이 아닌 뮤직텐트에 많은 청중을 불러 모았지만 그 비용을 치른 셈이 됐다.

소프라노 홍혜란과 남성 중창단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D.920을 노래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두 세기 전을 불러낸 프로그램은 호화로웠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현악4중주인 15번 1악장과 피아노3중주 2번 전곡, 그리고 성악곡 8곡이 무대에 불려나왔다. 제1바이올린 신아라를 비롯한 현악4중주 팀의 준비가 예사롭지 않았음은 첫 곡부터 뚜렷했다. 현악4중주 15번 첫악장의 물결처럼 숨쉬는 16분음표의 셋잇단음표가 마치 붓과 펜, 마커를 한 자루에 붙여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정밀하게 표현됐다. 이 팀의 첼로 배지혜와 바이올린 박지윤, 피아노 박종해가 호흡을 맞춘 3중주도 여기에 지지 않았다. 4악장에서 피아노의 쏟아지는 하행 음형과 여기 달라붙듯 호흡을 맞춘 앙상블은 경탄스런 순간이었다.

주요기사
부부 성악가인 소프라노 홍혜란과 테너 최원휘는 박종해의 피아노에 맞춰 ‘십자군’ ‘별’ ‘강 위에서’ 등 잘 연주되지 않는 슈베르트 성악곡들을 단아한 표정으로 들려주었다. 성악 라인이 피아노에 주도권을 주고 자기 색깔을 줄인 점은 아쉬웠다. 평창대관령음악제 프로그램북은 완성도 높기로 정평이 있지만, 이날 성악곡들의 가사를 싣지 않은 점도 아쉬움을 남겼다.

하루 앞선 7월 31일, 같은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는 젊은 지휘자 차웅의 지휘로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공연 ‘등정’이 열렸다. 각 악기 수석을 비롯한 연주자들의 면면만으로 환호를 일으키는 이 ‘비상설’ 오케스트라는 국내에서 가장 기대하고 보는 관현악단으로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색깔이 뚜렷하고 다이나믹한 짧은 관현악곡 세 곡과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이라는 프로그램만으로도 이미 열렬한 반응이 예상됐지만 이날의 호연은 기대를 뛰어넘었다. 차웅의 리드는 능란했고 김홍박이 이끄는 호른 팀의 완벽한 앙상블과 조성현이 이끄는 플루트 팀의 밝고 뚜렷한 색감이 돋보였다. 현악 솔로부, 특히 저음이 묻히기 쉬운 뮤직텐트의 악조건을 첼리스트 김두민은 바로 극복해냈다. 매년 뮤직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비롯한 소음은 축제 실무진이 특히 유념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된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시대를 단절 없이 ‘살고 있는’(alive)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해마다 뚜렷한 주제의식과 연주의 완성도로 그 기대를 계속해서 높여가고 있다. 올해 축제는 7일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폐막 콘서트 ‘내려갈 때 보았네’로 마무리된다.

평창=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