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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한국인 첫 WHO 총장… 누구도 성공을 믿지 않았다

입력 2021-06-26 03:00업데이트 2021-06-2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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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WHO 사무총장 이종욱 평전/엄상현 지음/496쪽·2만8000원·동아일보사
이종욱이 2003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수장에 오른 과정은 험난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여수 세계엑스포 유치에 외교력을 총동원하던 터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선거를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그의 당선 가능성 자체를 낮게 봤다. “감이 되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이종욱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대 강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해외 인맥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러시아, 중국,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정작 우리 정부의 공식 추천서를 받는 게 쉽지 않았다. 반전은 그와 친했던 셰러드 캠벨 브라운 미 하원의원 등 동료 의원 54명이 지지 서명에 이름을 올린 후 시작됐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당초 입장을 바꿔 추천 결정을 내렸다.

당선 이후에는 정부 관계자들의 민원에 시달리기도 했다. 현직 언론인인 저자가 유가족을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2004, 2005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노벨의학상을 받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종욱의 막냇동생으로 정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이종구는 “형이 전화를 많이 해와 ‘굉장히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형은 의료인으로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책에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진 1960년대 그가 5수 끝에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이야기와 미국 유학 준비 중 일본인 여성 레이코 여사를 만난 일화 등도 소개됐다. 사회의 반일 분위기에서 가족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한다. 이후 이종욱은 남태평양 외딴 섬의 응급실 의사를 거쳐 세계 각지의 원시림을 누비며 한센병 퇴치에 나섰다.

이 책은 2012년 이종욱이 WHO 사무총장에 재직할 당시 그의 연설담당 비서였던 데스먼드 에버리가 펴낸 평전을 참고했다. 저자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평전을 쓰면서 이종욱의 성장기와 연애사부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사(秘史)까지 폭넓게 취재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5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책을 통해 한 거인의 생생한 인생 역정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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