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고 무거운 고전, 가볍게 읽고 싶을 때[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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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리뷰툰/키두니스트 글·그림/404쪽·1만7000원·북바이


이호재 기자
이호재 기자
고전(古典)은 참 넘기 힘든 산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두꺼운 고전을 읽다가도 스르르 잠이 든다. 정신이 멀쩡할 때도 제대로 읽기가 쉽지 않다. 눈으로 활자를 따라가면서도 머리에는 딴생각이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산을 넘었을 땐 일종의 희열이 온다. 책을 덮고 나선 여운이 남아 잠에 못 들기 일쑤다. 어느 날 길을 걷다 고전에서 읽었던 문장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 책은 고전 문학 작품을 쉽고 친절하게 소개한다. 특이한 건 작가가 소개를 글로 썼을 뿐 아니라 만화로도 그렸다는 것. 2019년 영화를 소개하는 만화책 ‘부기영화’(씨큐브)가 출간된 것처럼 영화를 소개한 만화책은 있지만 문학 작품을 만화로 소개한 책은 한국에서 처음이다. 재미없게 느껴지는 고전의 문턱을 유머와 ‘드립’(애드리브의 준말)을 통해 낮추겠다는 저자의 포부에 이끌려 책을 열었다.

일단 술술 읽힌다. 저자가 스스로를 모델로 삼아 만들었다는 만화 속 캐릭터는 고전 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한다. 각 고전을 읽게 된 계기와 과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가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나서 허무함과 혼란에 빠진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중세 유럽 수도원을 배경으로 쓴 소설 ‘장미의 이름’은 이해하기 힘들어서 반년에 걸쳐 읽는다. 고전을 읽는 데 애를 먹고, 읽고 나서도 여러 감정을 느끼는 모습에 마음이 동한다.

고전이 쓰이게 된 배경과 의미도 충실히 전달한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이 감시 사회를 배경으로 쓴 소설 ‘1984’가 1940년대에 쓰인 의미를 냉전시대와 엮어 설명한다. 영국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담긴 당대 풍자의 의미도 짚어준다. 제목에서 밝힌 대로 리뷰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는 셈이다. 저자가 20대 여성이라는 점도 의미 있다. 번외편으로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56)의 소설 ‘해리포터’를 다룬 것도 저자의 특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다만 다루는 작품의 절반 이상이 영미권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은 아쉽다. 기존에는 보기 힘들었던 제3국가의 문학 작품으로 고전의 범위를 넓혀가는 최근 세계문학전집의 흐름은 반영이 안 된 것 같다. 유수의 문학 평론가들의 평론집과 해설의 깊이를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색다른 해석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 있는 건 문학을 쉽게 설명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적지 않은 고전이 쓰일 때만 해도 대중 소설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복잡한 해설이 덧붙여졌을 뿐이다. 문학 평론이라는 말이 낯설어진 시대, 독자에게 필요한 건 무거움보단 가벼움일지도 모른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고전 리뷰#고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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