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펼친 아름다운 선율, 그 길을 따라 걸었네[유(윤종)튜브]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3-01 15:41수정 2021-03-0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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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튜브 영상 캡쳐.

사사(師事)는 ‘누구를 스승으로 섬기고 가르침을 받음’을 뜻한다. 사숙(私淑)은 ‘누구를 마음속으로 본받아 학문이나 기량을 닦음’을 말한다. 러시아의 대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1840~1893)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관계는 ‘사숙’에 가까울 것이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일은 없지만 모국의 대가 차이콥스키의 존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거대한 산과 같았다. 차이콥스키는 만년에 ‘내가 죽고 나서 러시아 음악의 길을 이어갈 젊은 인재’로 라흐마니노프를 언급했다. 그가 돌연 사망하기 한 달 전 라흐마니노프를 만났을 때, 갓 스무 살의 후배가 교향시 ‘바위’를 포함해 그 해 쓴 작품들을 보여주자 차이콥스키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다니, 나는 마지막 교향곡이 될 작품 하나를 겨우 썼는데”라며 격려했다.

그 예언과 같은 말처럼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나자 라흐마니노프는 슬픔에 휩싸여 피아노3중주곡 ‘비가(悲歌)풍 3중주 2번’을 썼다. 차이콥스키가 스승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의 죽음에 부쳐 3중주곡 ‘위대한 음악가의 추억’을 쓴 것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투철한 예술적 세계와 개성을 갖춘 작곡가였다는 점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서는 대선배이자 정신적 사부인 차이콥스키의 영향이 짙게 엿보인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2악장을 들어보자. 현악기들이 느리게, 안개와 같은 신비롭고도 침울한 분위기를 지어내면서 시작된다. 13년 앞서 나온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2악장도 같은 분위기로 시작한다. 스승에 대한 라흐마니노프의 경모가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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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두 사람은 닮아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음악은 일상의 친근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작품은 작곡가의 경험 일체를 담아야 한다’고 했다. 음악의 구조적 형식미나 신비적 기능을 강조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음악관은 그들의 작품을 누구나 친근하고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두 사람의 작품 속 ‘닮은꼴’을 더 들여다보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 1악장이나 교향곡 5번 2악장의 중간부는 일정한 멜로디 패턴이 반복되면서 끝없이 높은 음을 향해 상승한다. 동시에 저음(베이스)선은 반대로 계속 낮아진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수법이지만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2악장의 중간부도 딱 그렇다.

약간 복잡하지만 한 가지를 더 들어보자.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은 중간부(발전부) 이후 다시 나와야 할 첫 번째 주제가 중간부에 미리 섞여들고, 완전히 매듭을 지은 다음 두 번째 주제가 회상된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조까지 차이콥스키를 따라했다. 교향곡 2번의 1악장에서다.

더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본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의 마지막 악장은 ‘짠짠짠 짠’ 하는 리듬의 강주(强奏)로 끝난다. 교향곡 6번 ‘비창’ 3악장이나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 1막도 같다. 차이콥스키의 ‘도장’이나 ‘서명’ 같은 이 개성 강한 마침도 라흐마니노프가 따라했다. 그의 피아노협주곡 2번, 3번 등도 ‘짠짠짠 짠’으로 끝난다. 리듬형은 살짝 바꾸어 두 번째, 세 번째 음표가 첫 음표보다 짧다. ‘나는 차이콥스키의 정신적 후계자이지만 똑같지는 않다’고 강조하는 듯하다.

21일 성기선 지휘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러시아 작곡가 시리즈: 라흐마니노프’ 콘서트를 연다. 피아니스트 박종해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일리야 라시콥스키가 협주곡 3번을 협연한다. 라흐마니노프가 차이콥스키로부터 본받았던 음악적 특징들도 주의 깊게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3월은 학교들이 문을 여는 달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스승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다. 지식은 배울 수 있어도 스승의 몸가짐이나 정신의 깊이는 온라인으로 배우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옛 사람도 나를 못 보고 나도 옛 사람을 못 봬, 옛 사람을 못 봬도 (그가) 가던 길 앞에 있네’라는 퇴계 이황의 시조처럼, 후학들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길이 보일 것이다. 만날 수 없는 옛 사람에게서도 배우는 바에야.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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