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출간 75년 만에 빛 본 소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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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앨리/윌리엄 린지 그레셤 지음·유소영 옮김/391쪽·1만4800원·북로드

세계적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를 올해 선보인다는 소식은 팬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그가 ‘셰이프 오브 워터’ 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인 데다 젊은 망나니 사기꾼이 정신과 의사와 한 팀을 이뤄 사람들로부터 돈을 뜯어낸다는 시놉시스가 관심을 끌었다. 앞서 그는 ‘셰이프 오브 워터’와 ‘판의 미로’로 각각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신작 영화가 동명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내 영화 팬은 적다. 영국 가디언지가 ‘세상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10권의 소설책’ 중 하나로 이 책을 선정할 정도로 작품성에 비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저자가 29세 때 스페인 내전에서 만난 전직 순회 공연단원으로부터 술을 얻기 위해 닭과 뱀의 대가리를 물어뜯은 알코올의존증 환자 이야기를 듣고 썼다는 이 책은 출간된 지 75년이 지난 뒤에야 영화화와 더불어 주목받게 됐다.

소설은 1940년대 카니발 유랑극단에 발을 들인 주인공 ‘스탠턴 칼라일’의 성공과 몰락을 그렸다. 칼라일은 유랑 도중 만난 ‘지나’로부터 독심술을 배워 큰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는 영매를 통해 죽은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심령주의 교회를 만들어 두려움과 죄책감을 가진 부자들을 갈취한다. 돈 뺏는 일에 중독돼 심신이 황폐해진 그는 여성 심리학자 ‘릴리스 리터’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파멸에 이른다.

이를 단순히 ‘독심술로 돈을 버는 사기꾼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건 소설이 담은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때문이다.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면 누구든 조종할 수 있고, 공포는 인간 본성으로 이어지는 열쇠라는 사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칼라일을 통해 인간이 병과 빈곤, 실패의 공포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지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책의 향기#나이트 메어#사기꾼#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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