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스타 지성인’ 수전 손택의 일대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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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SONTAG)/다니엘 슈라이버 지음·한재호 옮김/500쪽·2만5000원·글항아리

1947년, 14세이던 수전 손택은 소설가 토마스 만을 만난다. 10대 소녀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전화 한 통 덕분이었다. 손택은 그의 소설 ‘마의 산’을 읽고 전율을 느낀 뒤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찾아 무작정 전화를 했다. 이 당돌한 소녀를 만은 집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이 만남에서 손택은 실망하고 당황했다. 카프카와 톨스토이를 좋아하던 그에게 만은 고작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물었던 것. 흥미로운 여고생 정도로 취급당한 이 경험을 손택은 훗날에도 우스갯소리로 넘기지 못했다. 강한 자아와 인정 욕망, 이것이 그녀를 스타 지성인이자 뜨거운 행동가로 만들었다.

이 책은 ‘20세기 문단에서 극찬과 동시에 가장 엇갈린 평가를 받은’ 손택의 삶을 시간순으로 추적한다. 2004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 출간된 전기로 독일 비평가가 집필했다. 손택이 남긴 글과 풍부한 주변 인터뷰를 토대로 했다. 때때로 과장되거나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춰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손택은 ‘캠프에 관한 단상’ ‘사진에 관하여’ 같은 에세이로 명성을 얻었지만, 패션지 ‘보그’에 모델로 등장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스타성은 대단해서 출판사는 책 뒤표지에 유려한 추천사 대신 그의 사진을 싣기도 했다.

그는 내전이 한창이던 유고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고 9·11테러 직후엔 미국 부시 정부의 전쟁 선동을 비판해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유방암 투병 과정에서는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써서 ‘환자들을 위한 운동가’가 됐다. 손택이 대중과 지성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어떻게 줄다리기를 해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설가 네이딘 고디머는 손택을 이렇게 기억했다. “수전은 자신의 지성을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데 사용했습니다. 개인으로만 살기를 거부한 것이 그의 남달랐던 점입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sontag#다니엘 슈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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