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서 커피 내리는 스님 “소욕지족의 삶 되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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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교육문화회관 관장 법만 스님

선운사 주지를 지낸 뒤 선운교육문화회관 관장을 맡고 있는 법만 스님. 그는 “자연과의 공생,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의
 삶이 필요하다”며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줄 수 있는 ‘스님의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고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선운사 주지를 지낸 뒤 선운교육문화회관 관장을 맡고 있는 법만 스님. 그는 “자연과의 공생,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의 삶이 필요하다”며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줄 수 있는 ‘스님의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고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스님, 뭐 하세요?” “보시다시피 커피 내리는 중이죠.”

지난달 24일 전북 고창군 선운교육문화회관 1층의 담마 북카페.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는 ‘민머리 바리스타’의 모습이 낯설다. 앞치마는 화사한 분홍색, 안에는 잿빛 승복, 머리는 반짝 빛난다. 두 차례 선운사 주지를 지낸 법만 스님(59)이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최연소 본사(本寺) 주지를 지낸 스님은 지난해 10월 완공된 회관의 관장을 맡고 있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언제 땄나.

“지난겨울 제자와 함께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녹차나 보이차는 박사 수준이지만 커피도 대접하고 싶었다. 요즘 여건도 힘든데 커피도 만들고, 아니면 설거지라도 해서 힘을 보태고 싶었다.”

―북카페가 널찍하고 분위기도 좋다.

“한쪽에는 스님들 전용 드립 바도 있다. 그곳에서 커피뿐 아니라 전통차도 마실 수 있다. 선운사 주변 녹차밭이 33만여 m²(약 10만 평)이다. 여건이 된다면 녹차, 청차, 황차 등 다양한 차도 선보이고 싶다.”

―주지 퇴임 뒤 선방 수행에 전념한다고 들었는데….

“2014년 주지 소임 8년을 마친 뒤 선운사 말사(末寺)인 참당암 선방에서 기도하고 수행하며 살았다. 사람에 시달리지 않고 잘 지냈는데…. 불교환경연대에서 상임대표를 맡아달라고 찾아왔다. 환경 문제만큼은 불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 차마 거절하지 못해 지난해부터 다시 밖으로 나서게 됐다.”

―이곳 관장 직함도 맡고 있다.

“내가 주지로 있을 때 부지를 마련했고, 사제이자 선운사 주지인 경우 스님이 건축을 마무리 지었다. 이 지역에 특정 종교를 떠나 육아에서 노후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개관을 준비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생겼는데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입장에서 관장까지 맡았다.”

―본사 주지와 관장 중 어느 소임이 더 어려운가.

“어울리지 않는 감투라 당연히 관장이다(웃음). 불교 쪽은 오랜 전통에 스님과 신도들의 힘이라는 큰 잠재력이 있다. 반면 여기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발생해 모든 게 버겁다.”

선운교육문화회관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명상실인 ‘보리수 아래’를 비롯해 북카페와 갤러리, 시니어클럽과 육아공동나눔터,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로컬푸드 판매를 위한 공간 등이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건축은 물론이고 운영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은데 경우 스님의 원력(願力)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선운사뿐 아니라 말사 70곳의 스님과 신도들도 함께 도와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은 없나.

“이곳 문을 열고 나니 자영업 하는 분들의 고통을 그대로 알겠더라. 북카페에서 개관을 기념하는 작은 음악회도 열고 갤러리에서 전시회도 했지만 코로나19 와중에 손님들을 모실 수가 없었다. 상황을 봐서 작가 초청 강연과 작은 음악회 같은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도서관도 문을 열 계획이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삶의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이전까지의 삶이 인간 위주로 소비적이고 전방위적인 것이었다면 이제는 자연과의 공생 속에 가족과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작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

고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북카페#스님#소욕지족#법만 스님#선운교육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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