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위기 한 가족史 통해 인류 전체의 난제 거침없이 그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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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4> 미국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

가족사를 통해 국가와 사회 전체를 조망한 조너선 프랜즌의 대표작 ‘인생수정’은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에 올랐다. 5∼10년 간격으로 작품을 발표해 온 그의 행보에 지금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가족사를 통해 국가와 사회 전체를 조망한 조너선 프랜즌의 대표작 ‘인생수정’은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에 올랐다. 5∼10년 간격으로 작품을 발표해 온 그의 행보에 지금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자국 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비단 한국에서만 들리는 게 아니다.

우리 삶의 기저에 자리 잡은, 견디기 힘든 어떤 경박함이 갈수록 득세하는 모습은 전 세계 평자들의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른다.

예컨대 소설의 세계에는 작가, 독자, 평론가들 사이에 이런 질문들이 자주 고개를 든다.

“작금의 문학에는 서브 컬처와 개별 세계에 지나치게 조명을 비추고 열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개인의 목소리가 너무 높아진 게 아닐까? 특정 집단의 관심이나 취향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아닐까? 인류의 운명이나 미래보다는 각자 내면으로만 파고드는 사소하고 지리멸렬한 스토리텔링이 이 시대 문학의 주류인가?” 》


2001년 가을,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조너선 프랜즌(61)의 ‘인생수정’은 위의 질문들에 모두 ‘예스(YES)’로 답하면서, 그런 추세들을 과감히 거부하는 굵직한 대작으로 우뚝 솟았다. 거침없고 희극적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인, 가슴 저 밑바닥을 뒤흔들며 감동을 주는 이 가족 드라마는 1950년대 미국 중서부에서부터 탐욕과 글로벌리즘으로 얼룩진 현대의 월스트리트 및 동유럽까지의 시공간을 아우르며, 단절과 해체의 위기에 직면한 한 가정의 역사를 통해 인류 전체의 문제를 오롯이 드러낸 걸작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가족사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적 갈등과 난제를 드러내고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좀 더 폭넓고 무게 있는 거대 서사를 지향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소설은 그해 전미도서상과 유서 깊은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상을 탔고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 선정되는 등 영미 문학계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사회비평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소설이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모습에 미국 문학계는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1990년대 초 소설 작법 세미나에 강사로 초빙된 프랜즌은 첫날 흑판 위에 두 개의 단어를 썼다고 한다. ‘진리’ 그리고 ‘아름다움’. 그러고는 선언했다. 이 둘이야말로 소설 쓰기의 목적이라고. 찰스 디킨스로 대표되는 픽션의 근원적 자세를 오늘날 위축된 미국 문학에 상기시켜 준 ‘인생수정’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열정과 신념,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는 각오의 결실이 아닐까? 한 가족이 실패와 비밀과 오래 숨겨진 상처로부터 아픔을 털고 회복하려면, 대체 어떤 인생 수정을 감행해야 할까? 그것은 곧장 우리 모두의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깊은 물음이다.

1996년 영국 문예지 ‘그란타’가 ‘미국 문단을 이끌 최고의 젊은 작가 20인’에 포함했던 그는 2010년 ‘인생수정’과 다소 닮은꼴이라 할 수 있는 ‘자유’를 발표했다. 3대에 걸친 가족사를 다룬 이 작품은 진정한 자유의 갈망과 책임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적나라한 초상을 그려내 또 한 번 독자들의 뜨거운 환영과 평단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150쪽짜리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환상을 지워버렸다. 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사건이 자리를 잡아가게 놔둘 수 있는 공간, 단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여러 다양한 캐릭터의 온전한 삶으로부터 그런 사건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싫든 좋든, 단 하나의 관점뿐이라면 나에게 절대로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인류의 조상이 오랜 투쟁을 거쳐 쟁취한 자유, 지금은 방종으로 내려앉은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소설 작품으로써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너른 야망과 큰 그릇이 느껴지지 않는가.


●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은…

1959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출생했으며 1998년 ‘스물일곱 번째 도시’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후 두 번째 장편 ‘강진동’을 거쳐 2001년 대표작 ‘인생수정’ 등을 발표했다. ‘인생수정’은 전미도서상, 퓰리처상, 전미비평가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3대에 걸친 가족사를 담아낸 ‘자유’(2010년)는 아마존, 뉴욕타임스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2015년 발표한 ‘순수’는 이상과 대비되는 냉혹한 현실 속 젊은 여성의 성장 서사를 담아냈다.

권기대 번역가·베가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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