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우리음악은 대안적 대중음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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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수궁가’ 낸 7인조 밴드 ‘이날치’
소리꾼 4명에 베이스 2명, 드럼 1명
솔-디스코-힙합의 흥까지 넘실
심청가도 아닌 왜 하필 수궁가일까
“댄스음악도 가능한 쿨한 스토리”

9일 발매되는 이날치 ‘수궁가’ LP레코드.
9일 발매되는 이날치 ‘수궁가’ LP레코드.
콘셉트는 별주부전, 장르는 댄스뮤직이다.

7인조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가 1집 ‘수궁가’를 냈다. 소리꾼 4명, 베이스기타 2명, 드럼 1명의 듣도 보도 못한 편제다. 별주부가 용왕 명 받잡고 토끼 간을 쟁취하려는 다 아는 스토리 속으로 뜻밖에 솔, 디스코, 포스트펑크, 힙합의 흥이 치고 들어온다. 가히 Z세대의 ‘정신줄’도 해체할 만한 그루브다.

2019년 결성, 1집 내기 전부터 이미 글로벌 그룹으로 부상했다. 국내외 팬들은 ‘이런 게 진짜 케이팝’이란 평과 함께 수궁가의 영문 번역마저 공유하고 있다.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멤버들은 “국악이 아니다. 따라서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의 미션도 지향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저 대안적 대중음악(alternative pop)일 뿐이라는 것.

리더이자 브레인은 장영규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곡성’ ‘부산행’ 음악을 맡은 한국 대표 영화음악 감독. 그가 정중엽(전 ‘장기하와 얼굴들’)과 베이스를 맡고 이철희(전 ‘씽씽’)가 드럼 스틱을 들었다. 젊은 소리꾼 넷은 독창이자 1인극 형식의 판소리를 창의적으로 찢어발겼다. 역할극으로, 제창으로, 때로는 스피커 양쪽에서 도깨비불처럼 번쩍이는 돌림노래로…. ‘범 내려온다’부터 ‘약일레라’까지 11곡이 숨 가쁘게 넘어간다.

판소리를 댄스뮤직으로 뒤집어 놓은 밴드 이날치의 멤버들은 “출발점은 수궁가, 종착역은 팝”이라고 했다. “원곡을 해체해 리듬이 위주가 된 음악, 소리를 핑퐁처럼 주고받는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얼터너티브 록, 포스트 록, 뉴웨이브 등 듣는 이마다 다른 장르로 불러주시니 참 좋네요.” 잔파 제공
판소리를 댄스뮤직으로 뒤집어 놓은 밴드 이날치의 멤버들은 “출발점은 수궁가, 종착역은 팝”이라고 했다. “원곡을 해체해 리듬이 위주가 된 음악, 소리를 핑퐁처럼 주고받는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얼터너티브 록, 포스트 록, 뉴웨이브 등 듣는 이마다 다른 장르로 불러주시니 참 좋네요.” 잔파 제공
하필 수궁가를 택한 이유는 뭘까. 장영규는 “댄스음악을 할 수 있는 판소리, 판타지를 열 수 있는 바탕”이라고 했다.

“심청가는 너무 슬프죠. 수궁가에는 동물이 여럿 나오니 역할을 나누기도 재밌고, 원래부터가 발랄하며 쿨한 분위기가 있어요.”(권송희)

“그간 국악 공연에서는 그런 발랄함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어요. 전통의 권위만이 국악을 꽁꽁 둘러싸고 있으니 몸이 굳어질 수밖에요.”(안이호)

‘신의고향’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등 여러 곡에 3박과 4박이 겹쳐 있다. 안이호와 권송희는 “밴드 연주는 4분의 4박자인데 소리꾼들은 중중모리로 부르는 등 밴드와 보컬이 각자 속으로 다른 박자를 세며 나간다”고 했다. 이철희는 “양쪽 리듬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쾌감이 나온다”고 했다.

용궁에 온 토끼를 둘러싼 법석을 묘사한 2번 트랙, ‘좌우나졸’은 영락없이 스피드 랩. ‘금군 모지리, 순령수 일시에 내달아 토끼를 에워쌀 제, 진황 만리장성 싸듯…’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기량에는 래퍼들도 울고 갈 지경. 소리꾼들은 “그냥 원곡의 자진모리를 좀 더 빠르게 불러본 것뿐인데…”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보컬 넷이 저마다 평생 익힌 수궁가 바디(한 마당 전부를 특정 명창이 전승하여 다듬은 소리)가 다른 것도 시너지를 일으켰다. 안이호는 정광수 바디, 권송희는 박초월 바디, 신유진은 보성소리에 기반했다. 보컬들은 “바디마다 사설(가사)이 조금씩 다른데, 가장 재미난 것들을 협의하며 조합했다”고 했다.

유행을 선도하는 여타 예술가 집단도 이날치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다. 신선한 음악에 반해서다. 9일 발표하는 LP레코드(CD로는 발매 안 함)는 호화양장판이다. 그래픽 그룹 ‘오래오 스튜디오’, 타투 예술가 ‘아프로 리’가 시각디자인을 맡았다.

이날치는 11, 12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1만∼3만 원) 춤 단체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함께한다. 조회수 150만을 돌파한 ‘범 내려온다’의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QR코드)에 등장한 그 팀. 이날치는 다음 달 여우락 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도 출연한다.

“각자가 각자로 존재하면서도 그 자체로 음악의 큰 그림,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서 좋아요. 2집, 3집 내며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팝 밴드로 성장하고 싶습니다.”(멤버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국악#대중음악#수궁가#7인조 밴드#이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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