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가 당신에게 평생직장을 선물한다면?…“거절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3일 15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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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 아르바이트 중 가장 시급이 높은 것은 강의였다. 대학생 해외 봉사단 100여 명에게 영상 만드는 법을 가르쳤는데 2시간에 26만 원을 받았다. 정신없이 첫 번째 강의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생각했다. ‘이거다! 이것이야말로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는 근로소득의 첫 단추다!’ 일단 적성에 맞았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성격이었고, 강의안을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다. 배우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너무 좋잖아.

하지만 어떻게 ‘또’ 강의를 하지? 이번 건은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얻은 기회였다. 뭐든 하면서 느는 법인데,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 기회만 기다리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혼자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근데 뭘 가르치지? 물론 영상 만드는 법을 가르쳐도 된다. 전 국민이 유투버를 꿈꾸는 시대여서 수요도 많다. 하지만 경력이 애매했다. 나는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기업이나 언론사가 의뢰하는 영상을 만들어 주는 프리랜서 PD이기 때문이다.

슬픈 사실은, 영상 편집은 누구나 2시간이면 터득할 수 있다. (내 직업은 곧 사라질지도.) 자르고, 붙이고, 음악 깔고, 자막 넣으면 끝이다. 그 다음부터는 감에 의존해야 하는데, 재미있게 편집은 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말로 가르쳐 줄 순 없었다. 미친 듯 연구하면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사이드 프로젝트가 그렇게 품이 많이 들면 안 되지.

고민만 하다 달력을 보니 11월이었다. 망했네. 올해 다 갔다.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록해 두질 않으니 생각이 잘 안 났다. 그 순간 워크샵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아쉬움을 팔아 12월에 글쓰기 수업을 열어 볼까? ‘2019년에 있었던 30가지 일을 기록하고 5편의 글을 씁니다. 올해를 기록하는 마지막 글쓰기 수업.’ 수요가 있으면 하고, 아님 말자는 생각에 포스터부터 만들었다. 디자인 앱을 사용하니 포스터가 뚝딱 만들어졌다. 1주일에 한 번, 5회차, 12만 원. 모름지기 좋은 글이란 솔직하고, 재밌고, 새로운 법이니 그걸 훈련시켜 주겠다고 할까? 수업자료로 쓸 책, 영화, 넷플릭스도 옆에 적어 두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니 이틀 만에 18명이 신청했다. 부모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냐고 했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으면서 뭘 가르친다고. 하지만 신문에 글을 연재하며 나는 배웠다. 글쓰기는 마감이 시킨다는 사실을. 죽음과도 같은 데드라인과 마감 직후 보낸 글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좋은 글을 쓰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그들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마감을 제공할 뿐이다.

다음 주면 벌써 마지막 수업이다. 수업을 통해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면, 나는 의외로 가르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거였다. 다만 다른 곳에서 희열을 느꼈는데, 바로 사람들이 쓴 글을 읽는 순간이었다. 안 쓰는 사람을 쓰게 만들고, 그 사람 안에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것. 짜릿했다. 오늘 밤 산타가 나에게 평생직장을 선물한다 해도 나는 거절할 거다. 필요 없어, 어차피 밀레니얼 세대는 퇴사한다구.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모험하고 싶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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