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년전 조선시대 천문시계 ‘혼개통헌의’, 국가 지정 보물된다

  • 뉴시스
  • 입력 2019년 4월 29일 1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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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늘을 관측하는 기구가 국가 지정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천체 관측 기구 ‘혼개통헌의’를 비롯해 고려시대부터 조선 시대 회화와 불상, 초기 철기시대 거푸집과 청동거울, 통일신라 시대 도기 등 7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원판형 천체 운동 관측기구에 합쳐서 표현한 기구로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제작 사례다.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 천문시계인 아스트롤라베를 실학자 유금(1741~1788)이 조선식으로 해석해 1787년 만들었다.
이 유물은 1930년대 일본인 도기야(磨谷)가 대구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2007년 전상운 교수(작고)의 노력으로 국내 환수됐다.

혼개통헌의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하는 원반형의 모체판(母體板)과 별의 관측지점을 알려주는 여러 모양의 침을 가진 T자 모양의 성좌판(聖座板)으로 구성됐다.

모체판 앞뒷면에 걸쳐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 선생을 위해 만들다(乾隆 丁未 爲約菴 尹先生製)’라는 명문과 ‘유씨금(柳氏琴)’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어 유금이 ‘약암’이라는 호를 쓴 ‘윤 선생’(실명 미상)을 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밤 시간에 특정한 별을 관찰하는 ‘규형(窺衡)’, 별의 고도를 확인하는 ‘정시척(定時尺)’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모체판과 성좌판만 남아 있다.

모체판은 앞면 중심에 하늘의 북극을 상징하는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하도록 만들어졌다. 외곽을 24등분하여 맨 위에 시계방향으로 시각을 새겼고 바깥쪽부터 남회귀선, 적도, 북회귀선의 동심원, 위쪽에 지평좌표원을 새겼다.

성좌판은 하늘의 북극과 황도 상의 춘분점과 동지점을 연결하는 T자형으로, 축과 황도를 나타내는 황도원을 한판으로 제작했다. 특정 별과 대조할 수 있도록 돌출시킨 지성침 11개가 있다.

뒷면 윗부분에는 ‘북극출지 38도(北極出地三十八度)’란 위도를 새겼으며 이는 곧 서울의 위도 37.5도에 해당한다.

모체판과 성좌판에 새겨진 별자리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에 근거했지만, 유금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도록 독자적 별을 그려 넣기도 했고 중국 책의 실수를 바로 잡아 반영하기도 했다. 이는 유금이 혼개통헌도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이와 연관된 기하학에도 능통했음을 의미한다.

이 ‘혼개통헌의’는 서양 관측기기인 아스트롤라베를 받아들여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유일무이한 천문 도구이자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한 조선 지식인들의 창의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실례다.

또 제작 원리와 정밀도로도 18세기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알려주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과학 문화재로서 보물로 지정해 가치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李寅文 筆 江山無盡)’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新編類聚大東詩林 卷九~十一, 三十一~三十九)’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高敞 禪雲寺 懺堂庵 石造地藏菩薩坐像)’ 등 고려와 조선시대 그림과 불상도 보물이 된다.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1745~1821)이 그린 그림으로 길이 8.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형식이다.

이인문의 그림 중 처음 보물 지정이 예고된 작품이다. 조선 말기 학자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소장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전통적 화제(畵題)인 ‘강산무진’을 주제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자연을 형상화했다.

웅장한 자연과 그 속에서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넓은 평원에서 시작하다가 우뚝 솟아오른 절벽이 나타난 전반부와 험준한 산세가 중첩되어 광활하게 그려진 중반부, 다시 잔잔한 풍경으로 연결되는 3단계 구성은 보물 제1986호 심사정(1707~1769)의 ‘촉잔도’(蜀棧圖)와 많은 유사성을 보여준다.

강산무진도는 산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촉잔도보다 풍속적 요소를 현실감 있게 결합시켰고 표현에 있어서도 붉은색과 연두색을 사용해 화사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점, 산의 생김새를 또렷하게 묘사해 박진감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이인문의 개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한국회화사에서 보기 드문 장권(長卷)의 산수화로서 전문 화가로서 그의 높은 기량이 발휘된 기념비적 작품이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광활한 산수 표현과 정교하고 뛰어난 세부 묘사가 일관된 조화를 이뤄 대표 조선 회화라고 해도 손색 없다.

신편유취대동시림 권 9~11, 31~39는 총 70권 중 권 9~11 및 권 31~30에 해당하는 책으로, 1542년(중종 37)께 쓰인 금속활자인 ‘병자자(丙子字)’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이다.

이 판본은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시의 원문과 비교할 때 차이를 보이고 있어 16세기 우리나라 시문집 간행의 과정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서책으로 판단된다.

신편유취대동시림‘ 조선 중종 연간의 문신인 유희령(1480~1552)이 고대로부터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를 모은 70권의 시선집이다. 기존에 간행된 시문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기적으로는 고대로부터 당대까지 왕실, 여성, 승려, 귀화인의 작품을 망라했다.

현재까지 동일 판본이 확인되지 않은 유일본이자 1516년에 중국 명나라 때 간행된 ’자치통감‘을 바탕으로 하여 주자도감에서 새로 주조한 병자자로 인쇄한 서책이라는 점, 조선 전기 금속활자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료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고려 말~조선 초에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이다. 온화한 표정과 불룩한 입술, 양쪽에서 드리워져서 여의두(如意頭) 형태로 마무리 진 띠 장식, 둥근 보주(寶珠)를 든 모습, 그리고 치마를 묶은 띠 매듭 등은 고려 말기 조각 양식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이 지장보살좌상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띠로 묶어 주름잡은 섬세한 두건의 표현 등이 조형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보주를 든 두건 지장의 정확한 도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여말 선초의 지장 신앙과 지장도상 연구에 귀중한 사례다.

이 시기 금동과 목조로 제작된 지장보살상은 몇 점이 전하고 있으나, 석조로 제작된 지장보살 중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사례는 참당암 지장보살좌상이 거의 유일하다.

대좌의 경우 보살상과 함께 조성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상·중·하대를 완전히 갖줬고 가늘고 긴 형태, 여의두문(如意頭文)이 새겨진 안상(眼象) 등에서 고려시대 특징이 뚜렷하므로 함께 보물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할 가치가 있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完州 葛洞 出土 銅劍銅戈 鎔范 一括)‘은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 2점이다. 1점은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의 거푸집을 새겼고, 다른 1점은 칼인 동검과 창인 동과가 각각 양면에 새겨졌다.

초기 철기시대 호남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로서, 고분의 편년과 거푸집에 새겨진 세형동검의 형식 등으로 볼 때 기원전 2세기께 실제로 사용된 후 무덤에 매장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이다.

이 석제 거푸집은 실제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같이 나온 유물들로 보아 출토 정황이 명확해 매우 드문 고대 청동기 생산 관련 유물로서 귀중한 문화재다. 거푸집의 상태, 새겨진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 등이 아주 자세하고 조각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거푸집들이 발견된 사례는 10여건이다. 대부분 출토지가 불분명하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출토 지점과 출토 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자료의 진실성과 중요성이 다른 거푸집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또 보존 상태가 양호해 당시 사회의 청동기 주조기술을 보여주는 데도 탁월한 가치가 있다.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完州 葛洞 出土 精文鏡 一括)‘은 초기 철기 시대인 기원전 2세기께 사용된 2점의 청동제 거울로서,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다.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에 자리한 갈동 5호와 7호 토광묘에서 1점씩 출토됐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정문경은 약 60점이다. 그 중 ‘전(傳) 논산 정문경’은 국보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순 대곡리에서 나온 정문경은 함께 출토된 팔주령(八珠鈴), 쌍주령(雙珠鈴) 등과 함께 국보 제143로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로 지정됐다.

완주 갈동 5호 토광묘와 7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정문경 2점은 전 논산 정문경이나 화순 대곡리 정문경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정교한 문양이 특징이다. 따라서 초기 철기 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정문경으로 판단되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이와 같이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2점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이 명확할 뿐 아니라 완형에 가깝고 뒷면에 새겨진 문양도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초기 철기 시대 청동기 주조기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다.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陶器 鉛釉印花文 壺 一括)‘은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됐다. 대호(大壺)와 소호(小壺) 총 2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호와 소호는 제작 당시 외호(外壺)와 내호(內壺)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는지 불분명하나 유사한 형태와 문양, 제작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같은 공방과 장인이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입자가 미세한 점토를 활용해 구워냈고 유약은 산화납과 산화동을 섞어 녹색을 띠도록 만든 녹유계 연유(鉛釉,; 납이 든 잿물)다. 구연부와 몸체 전반에 걸쳐 종류가 다른 인화문을 찍었으며 문양대를 분할해서 시각적 다양함을 추구했다.

뼈항아리 계열의 통일신라 연유도기 항아리 중 가장 크고 문양소재가 화려하며, 통일신라 시대 연유도기의 제작과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비록 구연부와 바닥굽 등이 일부 파손돼 후대에 보수를 거쳤으나 동시기 도기와 비교할 때 조형·기술적 측면에서 독보적이며,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 측면에서도 8세기 통일신라 도기를 대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므로 보물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 예고한 ’혼개통헌의‘ 등 총 7건에 대해 30일간 예고 기간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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