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도스토옙스키가 소설로 부활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1일 03시 00분


◇페테르부르크의 대가/J. M. 쿳시 지음·왕은철 옮김/384쪽·1만4800원·문학동네

스물 한 살 된 아들이 죽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살던 하숙집에 머물며 아들의 흔적을 더듬는다. 아들의 냄새가 희미하게 밴 양복에 얼굴을 묻자 아픔이 밀려온다. 한데 이런 고통의 순간을 어떤 글로 남길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지독한 직업병임을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멈출 수 없다. 아버지는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다.

저자는 도스토옙스키가 ‘악령’을 쓰게 된 과정을 상상하며 한 편의 흥미로운 소설을 완성했다. ‘악령’은 혁명가 네차예프가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던 중 탈퇴하려던 친구 이바노프를 살해한 ‘네차예프 사건’에 영향을 받아 쓴 작품.

저자는 도스토옙스키를 아버지로 내세웠다. 도스토옙스키는 아들이 급진적 혁명 모임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자 자살이 아닌 타살 가능성을 의심하며 파고들기 시작한다. 1869년 러시아를 배경으로 아들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가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는 가운데 아버지가 느끼는 분노와 죄의식, 욕망을 촘촘하게 비춘다. 후반부로 갈수록 뜻밖의 반전이 일어나며 혁명의 딜레마와 함께 인간 내면에 도사린 추악함과 비겁함, 모순이 터져 나온다. 창작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도구화할 수 있는 인간의 행위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비뚤어진 혁명 정신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에 대한 예리하고 서늘한 고찰이기도 하다. 원제는 ‘The Master of Petersburg’.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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