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파괴한 전쟁영화… 진짜 전쟁을 보여주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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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런 감독의 새 영화 ‘덩케르크’
2차대전 연합군 탈출작전 그려… 살육전도 전우애도 영웅도 없지만
106분간 전장에 있는듯한 느낌… ‘인셉션’ 등 전작과 확연히 달라

영화 ‘덩케르크’는 실제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서 촬영했다. 하늘에선 전투기가 군인들을 보호하고, 수백 척의 민간 선박들은 목숨을 걸고 해안의 군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몰려든다. 사진은 영화 속 병사 토미가 구출을 기다리는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덩케르크’는 실제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서 촬영했다. 하늘에선 전투기가 군인들을 보호하고, 수백 척의 민간 선박들은 목숨을 걸고 해안의 군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몰려든다. 사진은 영화 속 병사 토미가 구출을 기다리는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전쟁 영화’를 본 게 아니라, 106분간 전쟁터의 한가운데 있었던 듯하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새 영화 ‘덩케르크’ 얘기다. 영화에는 으레 전쟁 영화라면 등장할 법한 장면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피 튀기는 살육전도, 눈물나는 전우애도, 일당백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영웅도 없다. 등장인물들끼리 전우애든 증오든 진한 감정을 나누는 장면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 시계의 초침 소리를 배경음 삼아 현재 그들이 처한 급박한 상황에 대한 설명만이 건조하게 오간다. 감독의 말처럼 ‘전쟁 영화보단 생존의 드라마’에 가깝다. 담백하지만, 그래서 여운은 길다.

영화의 배경은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이다. 조국까지 불과 42km를 두고 고립된 영국군과 연합군을 탈출시키기 위한 사상 최대의 탈출 작전을 담았다. 실제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거친 파도를 뚫고 온 건 영국의 작은 민간 선박들이었다. 이미 충분히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감독은 영화 전체에 달고 짠 ‘조미료’를 뿌리지 않는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면에선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신 “생존은 공포이자 탐욕”이란 냉정한 대사를 내뱉고, 긴 여정을 마친 병사들은 자신들을 반겨주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한 게 없다”고 담담히 읊조릴 뿐이다.

그 대신 감독은 세 개의 공간을 오가는 새로운 구성을 택했다. 해안과 바다, 하늘의 세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오간다. 그 덕분에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들 듯 어깨가 움츠러드는 긴장감은 유지하면서도 쉽게 지루해지지 않는다. 관객들은 해변에서 하염없이 구출을 기다리는 군인들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하고,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덩케르크로 가는 민간 선박에 올라타기도 한다. 때로는 적기를 격추시켜야 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외로운 여정에도 동행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영화 속 캐릭터와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강렬하고 역동적인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얘기다.

‘인셉션’(2010년) ‘인터스텔라’(2014년) 등에서 감독은 무척 복잡하게 전개되지만 어느 순간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꿰어지는 특유의 연출력을 뽐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연출 방식에 더해 컴퓨터그래픽(CG) 같은 인위적 효과를 최대한 배제하고 전부 IMAX(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해 영상의 품질을 높이다 보니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인물’이 흐릿하다는 건 오히려 이 영화의 강점이다. 등장인물들은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는 자신들의 시선을 관객에게 잠시 빌려줄 뿐,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 되진 않는다. 초반부터 비중이 큰 어린 병사 토미(핀 화이트헤드)를 포함해 대부분의 인물은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조차 잘 모른다. 배우 개인이 도드라지지 않는 덕분에 영화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전쟁 영화 특유의 공식을 과감하게 버리니, 비로소 진짜 전쟁이 어떤 것인지 보인다. 2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 5개 만점)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영화 덩케르크#전쟁 영화#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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