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여성혐오 범죄, 남성들은 왜 침묵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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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자들/록산 게이 지음/김선형 옮김/372쪽·1만5000원/사이행성
◇마초 패러독스/잭슨 카츠 지음/신동숙 옮김/516쪽·1만9000원/갈마바람

1995년 4월 9일 여성단체 케이프 코드가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한 ‘빨랫줄 프로젝트’. 여성 혐오 범죄 피해자 혹은 살해된 희생자들의 친구들이 티셔츠에 다양한 메시지를 적어 빨랫줄에 내건 캠페인이다. 이 행사는 미국 사회 내 여성 혐오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갈마바람 제공
1995년 4월 9일 여성단체 케이프 코드가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한 ‘빨랫줄 프로젝트’. 여성 혐오 범죄 피해자 혹은 살해된 희생자들의 친구들이 티셔츠에 다양한 메시지를 적어 빨랫줄에 내건 캠페인이다. 이 행사는 미국 사회 내 여성 혐오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갈마바람 제공
‘여성 혐오, 강남역 살인사건, 성폭력….’

지난해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한국사회에 여성 혐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맞서 마치 거울로 반사하듯 똑같은 방식으로 남성을 비난하는 미러링 현상도 거셌다. 한국사회에선 ‘여혐 vs 남혐’을 둘러싼 타협 없는 논쟁이 한동안 이어졌다.

여성 혐오 범죄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신간이 나란히 출간됐다. 지난해 ‘나쁜 페미니스트’를 출간해 국내에 이름을 알린 미국 퍼듀대 록산 게이 교수의 신간 단편소설 ‘어려운 여자들’과 미국의 성폭력 예방 활동가 잭슨 카츠의 ‘마초 패러독스’ 이야기다.

‘어려운 여자들’의 저자 록산 게이.
‘어려운 여자들’의 저자 록산 게이.
록산 게이의 ‘어려운 여자들’은 다양한 이 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21가지 에피소드로 엮었다. 성폭력 피해 여성, 학대받은 여성,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오럴섹스의 달인으로 남자가 끊이지 않는 여성…. 21가지 이야기 속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여성들이면서도 각기 다른 삶을 이야기한다.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 빠른 호흡의 문장은 작품이 지닌 힘이다. 10세, 11세의 앳된 자매가 건장한 남성에게 납치된 뒤 가해 남성에게 번갈아가며 강간당하는 에피소드에서 저자는 “우리는 애원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는 한 줄의 문장으로 피해 여성들의 아픔을 응축시켜 표현했다. 사냥 전 반드시 섹스를 해야 하는 사냥꾼을 남편으로 둔 아내의 에피소드에서 “나는 칼이다”(사냥의 도구일 뿐이라는 뜻)란 단문으로 주인공의 정체성을 꿰뚫어 낸다.

작가는 여성 혐오 범죄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생존자인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삶을 모자이크처럼 엮어 결국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게 한다. 저자는 주제와 소재, 장르적 시도를 교차하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능력을 구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뻔한 페미니즘 책이 아닌 문학과 사회서적의 경계를 묘하게 오가며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마초 패러독스’는 ‘여성 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라는 제목의 TED 강연으로 150만 명의 시청자를 모은 잭슨 카츠의 신작이다. 여성 폭력과 성차별을 부추기는 왜곡된 남성 문화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2003년 이라크와 쿠웨이트에서 발생한 미군 동료 성폭행 스캔들, 오렌지카운티 포르노 비디오 성폭행 사건 등 미국 내 성폭행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구조를 분석해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단순히 성범죄를 남성 문화 탓으로만 결론 내지 않는다. 성폭력은 남성의 힘과 지배력, 여성의 복종과 종속을 미화하고 성적 매력을 부여한 문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성범죄를 줄이는 해법으로 남성들의 인식 변화와 적극적인 사회 참여 활동을 꼽는다. 성차별 및 여성 폭력에 관한 논의의 장에 침묵하는 다수의 남성이 ‘남성다움’을 규정하는 또래 문화의 특수한 환경을 깨고 나와 잘못된 사회규범을 바꾸기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어려운 여자들#록산 게이#마초 패러독스#잭슨 카츠#여성혐오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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