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는 맨부커상을 받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팬이 있는 영국 소설가다. ‘시대의 소음’은 ‘예감은…’ 이후 5년 만인 2016년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20세기의 대표적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생애를 재구성했다.
소설은 쇼스타코비치가 여행 가방을 종아리에 기대 둔 채 초조하게 승강기 옆에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탈린 정권의 눈 밖에 난 그는 한밤중에 들이닥치는 비밀경찰에 가족 앞에서 잠옷 바람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서 있는 참이다.
소설의 1, 2, 3장은 각각 “그가 아는 것은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뿐이다”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쁜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소비에트 국가로부터 환대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소설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열아홉 살에 쓴 첫 교향곡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성공을 거듭하다가 스탈린 앞에서 연주 실수를 한 탓에 음악을 금지당하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소비에트 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융숭한 대접을 받지만 자신이 쓰지도 않은 연설문에서 자신의 우상인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를 비판하게 된다. 이후 스탈린의 부름으로 명예를 회복하지만 원치 않았음에도 공산당 가입을 강요당한다.
노년이 된 쇼스타코비치는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라고 독백한다. 그러나 저자는 쇼스타코비치를 일신의 안전을 위해 체제와 타협한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치열한 내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끝까지 추구한 인물로 그린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이,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간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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