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학술대회
피난-납치-유배 등 이유로 가출… 암자-산에 운신하거나 도술 연마
적군 왕비가 돼 쫓아낸 집에 복수도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이 2010년 낸 삼대록계 장편소설 5종 역주본. 동아일보DB
여성과 길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조선 사대부가의 여성은 ‘별일’이 있어야 길을 떠날 수 있었지만 근현대 문학은 대도시나 해외에서 활약하는 신여성을 그렸다. 고전 소설에서 길 떠나는 여성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정선희 홍익대 교수(47)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고전여성문학회가 연 학술대회 ‘길 위의 여인들’에서 ‘길 떠나는 여성들: 피화(避禍)와 가출, 납치, 유배, 축출’을 발표했다.
발표에서 정 교수는 삼대록(三代錄)계 국문 고전소설을 살폈다. ‘○씨삼대록’ 같은 제목을 갖고 있는 삼대록계 소설은 할아버지부터 손자에 이르는 집안의 이야기를 다루며 17세기 후반∼18세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소설 속 여성들은 왜 집을 떠났을까. 먼저 ‘가출’이다. ‘유씨삼대록’의 진양공주와 유세창의 아내 설초벽, 유세필의 아내 박 씨 등은 시가 어른들을 설득해 자발적으로 집을 나간다. 남편이 자신을 소외시키거나 난(亂)이 벌어졌을 때 가출해 자신만의 공간이나 친정 등에서 사는 것. 정 교수는 “친정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효심이 지극한 여성 등장인물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화(禍)를 피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도 한다. ‘조씨삼대록’의 유현의 아내 정 씨, ‘임씨삼대록’의 임월혜, 주난벽 등이다. 이들은 남편이나 시부모 살해, 간통 등의 누명을 쓰고, 밤에 몰래 도망 나오거나 강에 몸을 던진다. 이 밖에 납치, 유배, 축출 등의 이유로 집을 떠난다.
집을 나선 소설 속 여성들은 주로 암자나 산 등 인적이 드물고 도승이 있는 초월적 공간에서 출산을 하거나 도술을 배우며 액운이 다하기를 기다렸다. 악녀로 규정되는 여성들은 오랑캐 땅에서 왕비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음란함을 무기로 왕들을 유혹해 권력을 잡은 뒤 자신을 축출한 가문에 복수하고자 했다.
정 교수는 “여성들이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는 당대인들의 운명론적 세계관과 초월적 가치관을 보여 주는 한편으로 당대 여성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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