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이미지 속에 숨은 복잡다단한 삶의 욕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1일 03시 00분


김지원 개인전 ‘맨드라미’

김지원의 ‘맨드라미’(2015년). 아마포 캔버스에 유채. PKM 갤러리 제공
김지원의 ‘맨드라미’(2015년). 아마포 캔버스에 유채. PKM 갤러리 제공
화가 김지원 씨(55)의 경기 포천시 작업실 뒤뜰 한편에는 어린아이 침대만 한 크기의 맨드라미 밭이 있다. 일부러 공들여 가꾼 건 아니다. 야생으로 자라기 시작한 것을 굳이 솎아내지 않다 보니 어느덧 밭처럼 모였다. 일상의 공간에 그렇게 찾아든 수북한 꽃술을 하나둘씩 캔버스에 옮긴 지 15년이 지났다. 6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PKM 갤러리에서 여는 그의 개인전 ‘맨드라미’는 맨드라미 연작 등 신작 3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흔히 불그레한 닭 볏과도 닮았다고 하는 맨드라미는 ‘예쁘다’는 소리를 좀처럼 듣기 어려운 꽃이다. 한 큐레이터는 고깃집 불판 위에서 꿈틀대며 익어가는 천엽(소 겹주름위)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꽃말 중 하나가 ‘괴기(傀奇)’인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아마포 캔버스에 유채물감을 뿌려 긁듯 그린 김 씨의 맨드라미는 언뜻 막 개복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의 옷 위에 튄 핏물방울을 떠올리게 만든다. 맨드라미는 봄에 씨를 뿌리면 한여름에 왁자하게 꽃을 피워냈다가 그 한 해로 생명을 다하고 저물어 사라진다. 다른 꽃말인 ‘치정’ 역시 그 피고 지는 양태를 고려하면 잘 어울린다.

김 씨는 투박한 모양새의 흔한 꽃인 맨드라미의 이미지에 복잡다단한 삶의 욕망에 대한 이런저런 심상을 얹었다. 바람에 흔들려 부스러지듯 불분명한 형태로 표현된 붉은 꽃잎이 시시때때로 분노, 격정, 그리움, 슬픔, 기쁨으로 맺혀 흩날린다. 녹색과 갈색을 빼고 파란색 또는 붉은색의 단색으로만 그린 맨드라미 소품은 웅크리고 앉은 괴물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기자기한 구상 드로잉 작업도 병행하는 작가는 소박한 장난기를 전시실 한구석에 슬며시 감춰 뒀다. 1층에 걸린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본 관람객은 ‘월리를 찾아라’처럼 숨겨 놓은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맨드라미 꽃밭 어딘가에 앉아 있다. 02-734-9467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김지원#맨드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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