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랍의 봄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 동아일보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유진 로건 지음/이은정 옮김/784쪽·3만 원·까치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모로코 기병들. 1920년대 당시 아랍 민족주의가 반영된 작품이다. 까치 제공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모로코 기병들. 1920년대 당시 아랍 민족주의가 반영된 작품이다. 까치 제공
테러, 석유, 난민, 여성 억압…. ‘아랍’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기 쉬운 말들이다. 아랍은 파편화된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아랍의 현재가 어떻게 탄생했고 왜 이렇게 복잡다단한 정치 지형을 갖게 됐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길 원하는 이에게 딱 맞는 책이 나왔다. 레바논 베이루트와 이집트 카이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하버드대에서 중동 역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아랍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1516년부터 2011년 아랍 혁명까지를 다룬다. 서구 중심이 아니라 아랍인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하려 애썼다.

오스만 제국에 이어 영국, 프랑스 등 서구의 지배를 받게 된 아랍인들은 강력 저항하지만 신식 무기와 강력한 군대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힘없던 아랍인에게 새로운 무기로 떠오른 건 석유였다. 아랍이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의 힘을 믿는 정치 세력이 강해지면서 이슬람주의 테러 세력이 형성됐다. 영국과 프랑스가 물러났지만 독재에 신음하던 아랍인들은 2011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억압에 맞서 일어났다. 오랜 기간 무력감에 젖어 있던 아랍인들이 인권과 안전, 경제 성장을 누리려면 스스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랍의 봄’은 그렇게 왔다. 대규모 전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매춘부가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던 18세기의 풍경 등이 풍성하게 펼쳐져 당시 시대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영국에 맞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여성, 최초의 이집트 페미니스트 등 가려져 있던 여성들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슬람이 출현한 후 7세기부터 다섯 세기 동안 아랍인은 세계의 주역이었다. 이는 이슬람 신앙을 가장 잘 실천했을 때 아랍인이 최고였다고 주장하는 이슬람주의자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아랍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대목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유진 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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