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恨에 유럽 민속음악 버무려 만들었어요”

  • 동아일보

음반 ‘판소리 춘향가’ 낸 6인조 그룹 ‘두번째달’과 소리꾼 고영열

서울 성북구 삼청각에서 만난 그룹 두번째달은 이번 앨범을 “국악 퓨전 말고 팝으로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왼쪽부터 백선열 최진경 김현보 고영열 이영훈 조윤정 박진우.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 성북구 삼청각에서 만난 그룹 두번째달은 이번 앨범을 “국악 퓨전 말고 팝으로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왼쪽부터 백선열 최진경 김현보 고영열 이영훈 조윤정 박진우.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사랑가’는 너울너울 장조라서 애간장이 더 녹는다. ‘쑥대머리’는 발라드다. 제이슨 므라즈의 ‘Bella Luna’처럼 기타가 펼친 달빛 융단 위로 처연한 소리가 발자국을 끌고, 하모니카는 옥문 밖 벌레인 양 구슬피도 울어댄다.

6인조 그룹 ‘두번째달’이 최근 낸 음반 ‘판소리 춘향가’는 춘향과 몽룡의 이야기를 아일랜드의 드넓은 광야로 옮겨놓은 듯하다. 여기 ‘이별가’에서 춘향의 탄식은 모허 절벽에서 대서양 쪽으로 흩뿌려지는 것 같다. 소리꾼 둘(고영열, 김준수)을 들여 판소리의 선율과 시김새는 수묵화처럼 그대로 살리되 유럽 민속음악의 무지개 색채로 배경을 수놓은 역작이다.

최근 서울 성북구 삼청각에서 두번째달 멤버들과 소리꾼 고영열을 만났다. 두번째달 리더 김현보는 2007년 아일랜드의 음악축제에 참가한 뒤 국악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그렸다. “어느 나라든 민속음악이 그래요. 처음 5분은 대단한 색채감으로 사로잡지만 그 이후엔 계속 같은 노래를 반복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5분의 벽’만 넘기면 승산이 있겠구나 싶었어요.”

음반은 그 벽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49분 5초간 청자를 포박해 둘 만치 자력이 세다.

“소리꾼과 협의해 춘향가 80여 개 대목 중 14개 눈대목을 골라 담았죠.”(김현보)

드라마 ‘아일랜드’ ‘궁’ ‘심야식당’의 음악으로 이름난 두번째달이다. 최진경은 “춘향가의 재구성은 마치 영상음악 작업과 같았다”고 했다.

“조선시대엔 마이크가 없어 목청을 크게 했기에 ‘사랑가’ ‘쑥대머리’가 억세게 표현됐다고 봤어요. 이제 마이크가 있잖아요. ‘사랑가’는 알콩달콩 둘(춘향과 몽롱)이 (로맨스가) 장난 아닌 노래로 만들어야겠다, ‘쑥대머리’는 슬프고 고달프게 가야겠다 했죠.”(김현보)

“원형은 두되 어렵고 긴 가사는 호흡을 짧게 쳐 전달하기도 했어요. 농부가는 원래 중모리장단인데 중중모리장단 수준으로 템포를 올렸죠.”(고영열)

‘군로사령’에선 드럼과 소리, 딱 둘이 노닌다. 재즈 빅밴드의 간주 같기도 한 드럼 연주는 또르르 구르며 우리 소리에 달라붙는다. ‘퉁… 착!’ 이어지는 ‘돈타령’은 블루스로 해석한 통에 슬로모션 코미디 같다. 춘향 잡으러 간 사람이 돈 대접 받고 흥청거리는 장면에 안성맞춤.

“조선시대에 백성이 할 수 있는 건 가죽(북) 하나 두고 노래하는 게 전부였을 거예요. 판소리는 엔터테인먼트였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우리 음악 즐기는 환경이 안 돼 있어요.”(고영열)

“얼마 전 전주 공연에서 관객들이 추임새를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짜릿했어요.”(조윤정)

“이제 전 국민이 함께하는 우리 소리가 또 한 번 나올 때가 됐습니다.”(김현보)

눈물과 웃음, 동서양 선율과 리듬이 얽어질 두 번째 춘향가 14곡 전부를 이들은 29일 서울 남산국악당 공연에서 풀어낸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두번째달#고영열#판소리 춘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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