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삶의 우연과 정체성 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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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이름 뒤에 숨은 사랑/줌파 라히리 지음·박상미 옮김/384쪽·1만2000원·마음산책

지난 일주일 동안 613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줌파 라히리의 장편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은 경계에 있는 이들의 삶을 그린다. 인도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 이들의 삶은 이쪽이라고도, 저쪽이라고도 하지 못한다. 한쪽에 살지만 다른 쪽을 잊지 못하며, 다른 쪽을 그리워하지만 그쪽으로 갈 수는 없다. 이미 여기에 살고 있으며 많이 적응해버렸다. 인생의 가장 큰 결심을 통해 한 나라를 떠나오면서 뿌리를 뽑아오고 다른 나라에 그 뿌리를 박았다. 그러나 떠나온 나라에는 뿌리 뽑힌 흔적이 너무나도 선연하며, 타국에는 쉽게 박히지 못한다.

다음 세대는 보다 굳세게 뿌리를 박지만, 그것은 적응이지 원래의 뿌리는 아니다. 고골리의 삶이 그랬다. 자신의 이름을 갖고 고민하는 것도, 여러 여자를 거치며 정착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삶 때문이다.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인정받지만 아슬아슬한 인생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이주자(移住者)라는 특수한 삶에 대한 얘기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설의 보편성은 삶의 임의성과 결정성이다. 고골리의 아버지 아쇼크가 사고를 통해 새로운 삶을 결심한 것이나, 어머니가 한두 시간의 결심 끝에 아버지와의 결혼을 통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타국의 삶을 선택한 것이나, 원래 이름이 담긴 증조할머니의 편지가 분실돼 그의 이름이 우연히 고골리로 정해진 것 등에서 보듯 삶은 임의적이다. 원래 생각하고 계획하고 결심했던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임의성은 결정적이다. 우연적인 것으로 삶은 규정된다. 그가 우연히 얻은 고골리라는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일어나서는 안 될, 제자리를 벗어난 곳에서 잘못 일어난 일들이지만 결국 끝까지 삶을 지배하는 동시에 삶을 견뎌낸 것들이었다.” 우리는 우연으로 점철되었으며, 그렇게 결정된 삶을 견뎌낸다. 그게 삶에 대한 예의이며 사랑인 셈이다.

고관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이름 뒤에 숨은 사랑#줌파 라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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