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서울 강서구에서 인천 청라국제도시로 이사 온 조정희 씨(45)는 서울로의 출퇴근은 큰 불편은 없지만 문화시설이 서울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지난달 인천의 숙박시설에 머물면서 한국 관광을 즐긴 중국인 장쯔린(張子林·55) 씨는 “‘별그대’ 촬영장소인 송도 석산 외에는 인천에서 기억에 남는 문화 명소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29일 문화관광체육부가 밝힌 2015년 전국 문화시설 총람에 따르면 인천에는 국립문화시설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한 곳도 없다. 문화 시설 불모지라는 인식을 갖기에 충분하다. 서울 종로구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부산 영도구에는 국립해양박물관, 경기 수원시에는 지도박물관 등 각 시도마다 국립문화시설이 최소 1~3곳씩 있지만 인천에는 단 한 곳도 없다.
공공도서관과 박물관, 미술관, 문예회관, 지방문화원, 문화의 집 등 이른바 ‘문화기반시설’도 88곳에 불과해 강원도 198곳, 충북 126곳, 충남 149곳 등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반면 인천에는 위험·혐오시설이 몰려 있다. 서울과 경기에서 발생하는 온갖 쓰레기와 건축폐기물 등을 묻는 수도권매립지가 인천 서구 백석동에 있다. 서울과 경기 주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하는 생산기지도 송도국제도시와 붙어 있다. 영흥화력, 인천화력, 서인천복합화력, 신인천복합화력발전소 등 4개의 화력발전소가 시내곳곳에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을 끼고 있어 한국의 관문으로 불리는 인천의 현실이다.
이런 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잘 알고 있는 인천시는 지난해 사활을 걸고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치에 나서 성공했다.
세계문자박물관은 세계 주요 문자를 소재로 다양하고 활발한 전시 체험 교류 활동이 이뤄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진다. 송도국제도시 센트럴공원 내에 교육 및 연구시설과 국제회의시설, 체험관, 공연장, 수장고를 갖추고 2020년 개관한다.
하지만 세계문자박물관 건립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재 세계문자박물관 건립에 필요한 예비타당성 조사 진행 중이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잘 나와야 내년 예산확보가 가능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월 중순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 중간보고를 할 예정이다. 세계문자박물관이 들어서는 송도 센트럴공원은 평일은 물론 주말 수만 명의 수도권 주민들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로 떠올라 세계문자박물관이 개관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
인천 시민들은 300만 명이 거주하는 한국의 관문 도시라는 위상에 걸맞게 세계문자박물관 같은 ‘국립 문화 시설’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인천은 인문학의 눈높이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자료와 공간을 갖고 있어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1920~30년대 건축된 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한국근대문학관이 바로 그 곳이다. 중구 해안동 2가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은 근대 문학과 인문학 관련 주요자료가 소장돼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2007년 11월 ‘한국학 컬렉션’을 인수해 2만4000여 점의 근대 문학 장서를 보유하는 등 총 25000여 점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년) 초판을 비롯해 안국선의 ‘금수회의록’(1908년). 이광수의 ‘무정’(1925), 염상섭의 ‘만세전’ 등 소중한 장서를 소장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문학이 있는 저녁’ 등 주민 대상 한국고전문학 명작특강을 비롯해 다채로운 강좌와 전시가 열려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 공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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