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해지는 알파고의 수읽기는 무서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8일 20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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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 복기한 알파고와의 일주일 <2> 방심한 2국

1국을 놓친 뒤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프로기사의 대국에선 볼 수 없는 이상한 수와 프로 정상급만이 두는 수를 번갈아 두는 알파고의 습성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수를 나쁜 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파고가 매 수마다 승리 확률을 계산해 착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봤다.

1국 때와 마찬가지로 딸 혜림이와 같이 대국장에 들어섰다. 딸과 있는 동안은 마음이 안정됐다. 그러나 대국이 진행될 때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내가 백번인 2국에서도 초반 흑의 이상한 수(△)와 최고의 감각(◎)으로 칭찬받은 수가 나왔다. 나는 1국 때의 경험을 살려가면서 알파고의 수법이 어떤지 파악하려고 했다. 흑 (△)를 보면서 어렴풋이 알파고가 모양을 결정짓고 가는 걸 좋아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흑을 든 알파고가 포석 끝 무렵 좌하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왔다. 알파고가 흑일 경우 48%의 승률로 출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승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작전이 무리하다고 봤다. 여기서 나는 우세를 차지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내 바둑이 느슨해졌다. 백 1로 그냥 나가서 끊은 게 실전인데 이것이 경솔했다. 먼저 ‘가’로 단수치고 나가야 했다. 바둑을 잘 모르는 분들은 그게 뭐 대단한 차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미세한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프로 세계에선 다르다.

내가 ‘가’로 단수하는 수를 보지 못한 것도 아닌데 충분한 수읽기를 하지 않고 실전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 게 경솔했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론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고 본다. 다른 프로기사들은 여기서도 아직 유리하다고 했지만 나는 확실히 유리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거의 이득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흐름이 상대로 넘어갔다고 본다.

이후 종반이 가까워질수록 정교해지는 알파고의 수읽기는 무서웠다. 마지막에 우상에서 왜 패를 안했냐고 밖에서는 의혹을 제기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얘기다. 패를 해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알파고의 패싸움 솜씨는 판후이 2단과의 대결에서 보듯 프로 정상급이었다. 링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링 위의 상황을 모른다.

▒ 바둑 용어

불계패(不計·resign) 한 쪽이 불리해 끝까지 두지 않고 도중에 패배를 선언하는 것. 상대 편은 불계승을 거두게 된다. 알파고가 4국에서 크게 불리해지자 화면에 ‘resigns’라는 표시를 올리며 돌을 던졌다.

패(覇·pae) 흑백이 서로 단수된 상태에서 동형반복을 거듭하는 것. 알파고가 복잡한 패를 잘하지 못한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3국에서 알파고는 프로 수준의 패싸움을 보여줬다.

화점(花點·flower point) 바둑판 맨 모퉁이에서 각각 4번째 선이 만나는 곳으로 점이 찍혀 있다. 알파고는 첫 수로 늘 화점만 뒀다.

덤(compensation) 먼저 두는 흑이 유리하기 때문에 백에게 일정한 집을 주는 것. 한국은 6집반, 중국은 7집반이다. 이번 대결에선 중국 덤을 썼다.

돌가리기(choosing color) 덤을 주는 바둑일 때 누가 흑과 백을 잡을지 결정하는 것. 보통 한 기사가 백돌 여러 개를 손에 쥐고 다른 선수가 흑 돌 하나를 올려놓는다. 백돌이 홀수면 흑 돌을 올려놓은 선수가, 짝수면 백돌을 쥔 선수가 돌 색깔을 선택할 수 있다.

초읽기(overtime counting) 제한시간을 다 쓴 뒤 주는 시간. 이번 대결에선 각자 제한시간 2시간에 1분씩 3회였다. 이 의미는 2시간이 지난 뒤 1분 안에 수를 두면 1분 3회가 그대로 남고 1분 안에 못 두면 2회, 다시 1분이 지나면 마지막 1회 남는다. 마지막 초읽기가 되면 1분 내에 꼭 한 수를 둬야한다. 두지 않으면 반칙패를 당한다.

복기(復棋·replay) 바둑이 끝난 뒤 어떤 수가 좋고 나빴는지 검토해보는 것. 이세돌 9단은 대국 상대와 복기를 열심히 하는 기사인데 알파고와는 복기를 할 수 없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정리=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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