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류-도자산업 발전 목표…범국민조선도공기념사업회 발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1일 14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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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범국민조선도공기념사업회’가 발족했다. 사업회는 한일 간의 화해와 교류, 한국도자산업의 발전에도 노력할 계획이다.

사업회를 준비해온 인사들은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라이온즈회관에서 발기인대회와 창립총회를 열었다. 총회 참석자들은 윤태운 한국도예협회장과 우동주 전 외교관을 공동회장으로 선임하고 작가 이호철 씨를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기념사업회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일본의 사가(佐賀) 현 아리타(有田) 시가 2016년을 ‘일본자기탄생-아리타자기 창업 400년’의 해라는 이름으로 올 10월에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데 자극을 받았다.

‘일본자기탄생-아리타자기 창업 400년’이라는 말은 일본자기는 아리타에서 시작됐고, 그로부터 400년이 흘렀다는 뜻이다. 역사적인 사실이고, 그 역사를 만든 것이 조선도공들이다.

아리타 지역은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도공 이삼평(李參平)이 이즈미(泉)산에서 양질의 백토를 발견하고 일본 최초로 백자를 만든 곳이다. 그때가 1616년이고, 그로부터 올해가 400년이다. 100년 전인 1917년, 아리타 시는 이삼평을 ‘도자기의 시조(陶祖)’로 추앙하며 ‘도조 이삼평비’라는 기념비도 세웠다. 아리타에는 지금도 14대 이삼평이 가마를 열고 있다.

이삼평만 있었던 게 아니다. 1631년에는 백파선이라는 여장부가 조선도공 960명을 이끌고 역시 아리타 히에코바에서 가마를 열고 백자를 생산했다. 백파선은 임진왜란 때 잡혀온 도공 김태도(金泰道)의 아내로, 남편이 죽자 뒤를 이어 가마를 운영했다. MBC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의 모델로 알려졌다.

조선도공들이 만든 자기들은 17세기 중엽부터 유럽에 수출되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중국 경덕진(景德鎭) 도자기를 사서 수출했으나 명과 청나라 교체기의 혼란 때문에 중국에 입항조차 못하자 일본 도자기로 눈을 돌렸다. 당시 나가사키에 있던 동인도 회사 직원들은 그곳에서 가까운 이마리(伊萬里) 항을 통해 아리타에서 만든 도자기를 사서 유럽에 팔아 큰돈을 벌었다. 일본 도자기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는 계기였다. 이곳에서 만든 자기를 ‘아리타야키’라고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수출한 항구 이름을 따서 ‘이마리야키’라고 한다.

사업회는 일본의 도자기가 세계적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코드의 하나가 된 점에 주목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일본에서 ‘도자기전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왜장들은 조선 도공을 마구잡이로 끌고 갔다. 끌려간 도공만 1만 명이라는 말도 있으나 추정일 뿐이다. 망향의 한을 억누르고 일본에서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통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그들은 일본의 도자 문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따라서 그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업회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겠다고 한다. 사업회 발족을 계기로 한국 도자업계도 생산-유통-소비의 구조를 선진화함으로써 우리나라 도자문화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사업회는 우선 올해는 10월의 일본 아리타 시 행사에 참가하고, 조선도공추모비와 백파선 추모상 및 기념관 건립에 노력할 계획. 그리고 비석 등을 건립하는 과정과 도자세계를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조선도공의 경유지 표석 설치, 한국도자의 발전방향 제시, 전국도자 페스티벌, 남북도자교류사업, 해외 순방전람회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백파선을 소재로 한 일본 소설 ‘용비어천가’ 한글 번역 및 뮤지컬화, 조선도공의 일본 내 삶의 조사 발굴, 조선도공에 대한 한일 공동연구 및 세미나 등도 검토하고 있다. 의욕도, 아이디어도 많으나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적 관심과 관련단체의 지원, 예산 뒷받침 등이 필요해서다.

하나 더 지적하자면 지역별 균형을 잡아야 할 것 같다. 사업회는 아리타 시의 400주년 행사에 자극을 받았고, 그래서 그곳에서 활약했던 이삼평과 백파선에 주목한다. 그러나 규슈에서 활약했던 조선도공들은 아리타 말고도 여러 곳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대표적으로는 아리타의 위에 있는 항구 가라쓰(唐津)를 중심으로 자기가 아닌 도기를 만들어 ‘가라쓰 모노’라는 말을 만들어낸 조선도공들이 있었다. 또 규슈 남쪽 가고시마 현 미야마(美山)에서 사쓰마야키(薩摩燒)를 시작한 심당길(沈當吉)과 박평의(朴平意)의 이름도 매우 높다. 심당길 후손은 심수관(沈壽官)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있는데 현재는 15대 심수관이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도자기 유파들 중에는 조선도공들이 시작한 것이 꽤 많다. 따라서 이들에게 골고루 눈길을 줘야 ‘범국민’이라는 말에 무게가 실릴 것이다.

사업회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자를 통해 과거와 미래,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꿈꾸는 단체가 시간이 흐르면서 성과를 내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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