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8>안온한 침실, 삶과 창작의 조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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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침실’(1888년)
반 고흐 ‘침실’(1888년)
비좁은 숙소 예약 경쟁이 치열하답니다. 하루 1만 원이 조금 넘는 저렴한 숙박비 때문만은 아닙니다. 방을 화가 침실과 똑같이 꾸몄답니다. 시카고미술관의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특별전 이벤트가 화제입니다.

서른일곱 짧은 생을 화가는 떠돌며 살았습니다. 스물네 개 도시, 마흔여 군데 잠자리를 전전했지요. 불편한 손님으로, 낯선 이방인으로 삶은 겉돌았습니다. 그런 삶이 뜻밖의 장소, 프랑스 남부 아를에 멈춰 섰습니다. 거처가 필요했지만 집 살 형편은 안 되었습니다. 남의 집 2층에 셋방을 얻었지요. 예산이 빠듯하다 보니 입지나 크기는 보잘것없었습니다. 하지만 의미만은 특별했습니다. 생애 처음 가져보는 자신만의 공간이었으니까요.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습니다.

안온한 침실이 생의 활기를 북돋았습니다. 독립적 공간이 작업의 몰입을 도왔습니다. 살짝 열린 창문가에서 예술가 협동조합 설립의 꿈을 꾸었을까요. 마주 놓인 두 개의 의자에 앉아 고갱과 날 선 예술 논쟁을 펼쳤을까요. 벽에 걸린 거울 앞에서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소동을 일으켰을까요. ‘정신 치료를 받겠소!’ 나무 프레임 침대에 걸터앉아 출동한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을까요. 참 많은 일이 있었던 아를의 침실은 석 점의 그림으로 남았습니다.

1888년 화가는 첫 침실을 그렸습니다. 아를에 거주할 때였어요. 최대한 휴식과 숙면의 공간으로 표현하려 했답니다. ‘해바라기’ ‘자화상’을 비롯한 대표작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는 ‘침실’을 주저 없이 최고 걸작으로 꼽았습니다. 그러고는 평온함이 깃든 침실을 다시 그렸습니다. 두 번째 ‘침실’은 이렇게 1889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탄생했지요. 잇따라 화가는 또 한 점의 ‘침실’을 제작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보낼 선물이었어요. 현재의 무탈함을 전할 형식과 내용으로 그림과 침실을 선택했군요.

주거비 부담이 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일까요. 미술관의 값싼 하룻밤 숙박 이벤트에 쏠린 관심이 우리 시대 결핍의 풍경 같습니다.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에 흩어진 침실 그림을 한데 모은 반 고흐 특별전. 그림 속 단출한 세간의 침실이 다시 보입니다. 아를의 침실은 최소한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속해야 할 삶을 위한, 화가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반 고흐#시카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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