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마음의 소리, 무의식에 물어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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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에릭슨의 심리치유 수업/밀턴 H. 에릭슨 지음/시드니 로젠 엮고 해설/문희경 옮김/384쪽·1만6000원·어크로스

지은이는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전문의다. 그의 딸이 두 살 때 아내가 읽던 신문을 잡아채 바닥에 던진 일이 있었다. “크리스티, 좋은 행동이 아니다. 신문을 집어 가져오렴. 엄마에게 잘못했다 사과해야지”라고 타이르자 딸은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에요”라며 맞섰다.

저자는 고집을 꺾지 않는 딸을 끌어안고 침대에 누웠다. 놔달라며 발버둥치는 아이에게 그가 답했다. “내가 꼭 그래야(너를 놔줘야) 하는 건 아니지.” 4시간이 지난 뒤 딸이 말했다. “신문을 엄마한테 갖다드릴게요.” 그가 다시 대꾸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잠시 고민하던 딸이 말했다. “신문을 집어 엄마한테 갖다드리고 잘못했다고 말해야 해요.” 그는 역시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니까”라고 답했다. 그러자 딸이 말했다. “신문을 집어 엄마에게 갖다드리면서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가 답했다. “좋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무의식을 증상의 원인으로 본 반면 밀턴 에릭슨은 무의식을 문제 해결의 원천으로 여겼다. 무의식에서 잠재력의 단서를 찾아내고 일깨워 스스로 길을 찾도록 이끈 그의 심리치료법은 딸에 대한 첫 훈육에서 잘 드러난다. 딸이 바람직한 행동을 내면화할 때까지 행동을 제어하며 기다린 것이다.

손자와 수학에 대해 얘기하다 원주율 각 자릿수를 그만큼의 철자로 치환해 구성한 문장을 들려줄 만큼 영민한 의사의 치료경험담 모음이다. 장자(莊子)의 문장에 그만큼 난해한 주해를 붙여 읽는 기분이 종종 든다. 막히면 중간을 뛰어넘고 일곱 번째 장을 펼치길 권한다. 좀 더 사적인, 손에 잡힐 만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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