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시원한 계곡바람 따라 걷는 길 ‘마음의 때’까지 말끔히 씻어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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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파 아웃도어스쿨과 함께하는 계곡 트레킹

이번 주말에는 산길을 따라 걷다 계곡을 만나면 잠시 숨을 돌리고 물속에 발을 담가보자. 온 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계곡 트레킹은 몸과 마음의 짐과 때를 씻어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네파 제공
이번 주말에는 산길을 따라 걷다 계곡을 만나면 잠시 숨을 돌리고 물속에 발을 담가보자. 온 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계곡 트레킹은 몸과 마음의 짐과 때를 씻어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네파 제공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 분명 고마운 비인데, 오늘은 영 반갑지가 않다. 지난여름 걸었던 법수치 계곡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배낭을 꾸렸는데 비라니. 그래도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이번에는 계곡뿐 아니라 아름답기로 소문난 부연동 임도까지 걸어볼 테니 말이다. 네파 아웃도어스쿨 시즌2 열두 번째 도전은 계곡과 임도(林道)를 넘나드는 트레킹이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다. 간혹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한다. 아침까지 쏟아졌다는 장대비 때문인지 계곡의 물은 생각보다 많이 불어 있다. 오늘 강사로 나선 네파 홍보대사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이정준 씨는 코스 답사를 다녀온 뒤 일정 변경을 요구했다. 목적지인 두말리교까지 부연동 임도로 먼저 이동한 다음, 이튿날 계곡 상태에 따라 하산 코스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부연동 임도는 내일 하산 코스로 정했던 길. 어성전 사거리에서 두말리교까지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거나, 부연동 임도를 걷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계곡 옆 포장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오늘 저녁에 비가 온다면 내일 하산 코스는 ‘이도저도’ 아닌 포장도로가 될 확률이 높다.

어성전 사거리에서 두말리교를 잇는 부연동길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사실 이 코스는 MTB(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에겐 제법 알려진 코스다. 라이더들은 적당한 경사로가 있고, 포장도로와 임도가 반반씩 섞여 있는 이곳을 라이딩하기에 최고의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그럼 걷기에는? 자전거 타기 좋은 길은 걷기에도 좋은 법이다. 포장도로라고는 하지만 차량 통행이 적고, 길 옆으로 아담한 계곡이 있어 트레커들에게도 매력적이다. 다만 두어 번 만나는 오르막에서는 땀 좀 뺄 각오를 해야 한다.

네파 계곡 트레킹에 참가한 이들의 표정이 밝다. 산 속의 맑은 공기를 한껏 머금은 듯하다.
네파 계곡 트레킹에 참가한 이들의 표정이 밝다. 산 속의 맑은 공기를 한껏 머금은 듯하다.
부연동길이 끝나고 임도로 들어서면 숲길이 열린다. 인적 드문,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길이다. 깔끔한 진입로에 비해 왠지 날것의 기운이 강하게 전해온다. 숲으로 발을 들이면서 느꼈던 약간의 긴장감도 아마 그런 숲의 겉모습 때문이었던 듯싶다. 하지만 막상 밟아본 숲길은 투박한 첫인상과는 달리 참 순한 모습이다. 부드럽게 돌아가는 길의 모양새도, 자박자박 밟히는 흙의 느낌도. 겉과 속이 어찌 이리 다른지. 마치 딱딱한 껍데기 속에 꼭꼭 숨겨둔 달콤한 속살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발걸음을 옮길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구름이 낮게 내려앉았다. 온몸을 감싸듯 밀려드는 안개 같은 구름 속을 걷는 기분이 묘하다. 90%를 넘는 높은 습도에 땀은 비 오듯 하지만 그래도 언뜻언뜻 맡아져 오는 상큼한 여름의 향기가 걸음에 힘을 실어준다. 가끔 만나는 작은 계곡도 참 반갑다. 정수시설 없이 마셔도 되는 시원한 물맛도 일품이지만 계곡에서 뿜어 나오는 냉기는 트레커들에겐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좁아지고 넓어지기를 반복하던 길은 산허리를 두어 번 크게 돌아 나온 뒤 다시금 숲길로 들어선다. 이번에는 제법 깊숙이 파고든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이지만 이젠 그 흔적이 흐릿하다. 허리까지 웃자란 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흡사 밀림 속을 걷는 것 같다.

부연동 임도의 전체 길이는 12km.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힘들고 고된 길은 더더욱 아니다. 지나는 내내 울창한 원시림에 눈이 즐겁고, 시원한 계곡바람은 도심에서 찌든 마음의 때까지 말끔히 씻어낸다. 은은히 들리는 산새 소리에 의지해 나만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호젓함은 덤이다. 제법 높은 구간을 지나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이는 꾸준히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길이지만 급하게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없어 그리 느끼게 되는 것인데, 실제로 임도를 걷다 보면 내가 언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경사를 느끼지 못하고 걷게 된다. 어성전 사거리에서 두말리교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린다.

이튿날 오전 7시. 눈을 뜨자마자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앞에 있는 계곡이다. 물살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수량이 많이 줄어 있었다. 이정준 감독도 이 정도면 일부 구간은 걸어볼 만하다는 사인을 보냈다. 서둘러 장비를 챙겼다. 미리 준비해간 비닐 봉투에 버너와 침낭 등을 차곡차곡 넣고, 적당히 공기를 채운 뒤 단단히 조였다. 배낭은 계곡 트레킹에서 부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장비다. 물이 깊거나 물살이 거센 구간에서 배낭은 무척 유용하다. 신발도 계곡 트레킹에 적합한 아쿠아슈즈로 갈아 신었다. 이젠 모든 준비가 끝났다.

맑게 갠 하늘과 달리 계곡은 호락호락 길을 내주지 않았다. 작년에 걸어본 곳이었지만 물살을 거슬러 오를 때와는 또 다른 요령이 필요했다.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스틱으로 뒤를 받쳤고, 물살이 거칠어지면 무리해서 걷기보다는 배낭을 이용해 물살에 몸을 실었다. 마치 물놀이 하듯이. 그렇게 물결 따라 흘러흘러 가는 사이 마침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용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소는 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물빛을 품고 있다. 이곳만 건너며 이번 도전도 끝. 앞서 건너간 이 감독의 지시대로 배낭을 끌어 안고 과감히 몸을 던진다.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앞으로 조금씩 몸을 저어 간다. 언제 내려앉았는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도 일렁이는 물결 따라 내 옆을 가만히 따르고 있다.

▼ 네파 홍보대사 이정준 감독이 전하는 계곡 트레킹 초보 가이드 ▼

[1] 배낭의 방수와 부력을 확보하라.


배낭은 물속에서 유일하게 부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장비다. 방수를 위해 사용하는 비닐봉투에 적당히 바람을 넣고 단단히 조여 두면 그만큼 효과가 더 좋다.

[2] 계곡 트레킹 시에는 전용 아쿠아슈즈를 신어라.

신발은 가급적 아쿠아슈즈를 착용하는 게 좋다. 아쿠아슈즈가 없다면 등산화도 무방하다. 물에 적은 등산화는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충분히 말려야 뒤틀림 등을 방지할 수 있다.

[3] 숲길에선 반바지보다 긴바지를 착용하라.

길을 걸을 때는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반바지 보다는 긴바지를 착용하는 게 좋다. 잘 정비된 산책로에서는 상관없지만 잡풀이 길게 자란 구간에서는 풀잎에 살을 베이거나 부러진 나무 둥치에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바지를 입었을 경우에는 수건이나 손수건 등으로 다리를 보호하는 노력도 잊어서는 안 된다.

글·사진 정철훈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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