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성듬성한 극전개, 텅 빈듯한 무대… 원작 담기엔 역부족

  • 동아일보

[리뷰]뮤지컬 ‘아리랑’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이 원작인 뮤지컬 ‘아리랑’. 신시컴퍼니 제공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이 원작인 뮤지컬 ‘아리랑’. 신시컴퍼니 제공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한마디로 평하자면 뮤지컬이라기보다 ‘노래하는 연극’ 같다. 극 전개는 대사 중심의 연극적 양식에 머물고, 음악은 등장인물의 감정 표현에만 국한되어 활용되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자면 고전적이고, 냉정히 말하면 구태의연하다. 조정래 작가의 베스트셀러 대하소설을 무대로 옮겨 큰 관심을 모은 신시뮤지컬컴퍼니의 창작 뮤지컬 ‘아리랑’ 얘기다.

이 작품의 미덕을 먼저 말하자면, 역시 묵직한 주제 의식이다. 이는 원작의 힘이 크다. 배경인 일제강점기, 그 모진 세월을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 민초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처럼 이 작품도 관객의 울분을 자아낸다. 일본 군사들에 의해 숯덩이로 변한 감골댁의 주검, 어미의 원수도 모른 채 곡소리만 내는 수국의 한(恨),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 소리 죽여 아리랑을 노래하던 민중…. 김성녀와 윤공주의 농익은 연기, 이소연의 구성진 소리는 긴 잔상을 남긴다.

하지만 50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는 대형 창작 뮤지컬로서 ‘아리랑’은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무엇보다 친절하지도 않고 새로울 것도 없는 무대와 극 전개가 가장 아쉽다. 사전지식 없이 극 중 등장인물만 따라가다간 스토리의 맥을 놓쳐버리기 십상이다. 일본 군인들이 일본어로 말하면 한글로 자막을 처리하는 등 ‘리얼리즘’을 추구하다가, “이치 니 산 시…”를 외치며 고개 숙이고 절명하는 희화화된 일본군의 죽음을 만나면 황당하고 당황스러워진다. 차곡차곡 이야기가 쌓여서 감성을 자극하고, 그 감정들이 뭉쳐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에 듬성듬성한 극 전개가 훼방을 놓는다.

대극장의 넓은 무대는 채워 있다기보다 차라리 비어 있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온갖 볼거리로 치장된 요즘 대극장의 흥행 뮤지컬들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다.

무대에서 시선이 가는 곳은 다양한 영상을 선보이는 대형 발광다이오드(LED)와 공연장의 좌우 벽면까지 투사되는 흑백 이미지들이다. 지난해 신시가 선보인 라이선스 뮤지컬 ‘고스트’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비주얼 효과들이다. 처음 본 관객이라면 신기할지 모르지만, 웬만한 애호가라면 ‘재활용’을 떠올리기 쉽다. 차이점이라면 작품에 시각 효과가 잘 녹아들었던 ‘고스트’와 달리 ‘아리랑’에서는 텅 빈 무대에서 세트의 도움을 받지 못해 화려하지만 외로운 존재가 됐다는 점 정도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무대로 옮기는 실험은 쉽지 않다. 12권짜리 방대한 대하소설을 3시간 남짓한 이야기에 응축하고 담아내는 혜안이 더해져야 한다. 당연히 선택과 집중을 통한 재구성의 ‘맛’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보다 간결하고 명확한 스토리 라인과 인물 설정, 이야기의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중언부언하고 중구난방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렇지 못하면 왜 굳이 아리랑을 ‘활자’가 아닌 ‘무대’로, 그것도 대중상업예술 장르인 ‘뮤지컬’로 만나야 하는지 명분을 찾기 힘들어진다. 원소스 멀티유스를 통한 부가가치 극대화는 그래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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