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두 곡의 크로이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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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두 곡의 ‘크로이처 소나타’가 연주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과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가 협연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1803년), 그리고 이경선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김호정이 호흡을 맞추는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1923년)입니다. 왜 두 곡은 제목이 같을까요? 야나체크의 곡은 현악4중주인데 왜 ‘소나타’라는 이름이 있을까요?

음악 작품의 제목과 형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리스트의 ‘전주곡(Les Preludes)’은 전주곡 형식의 작품이 아니라 교향시입니다. ‘전주곡’이란 제목이 붙은 이유는, 시인 라마르틴이 쓴 ‘인생은 미지의 노래에 대한 전주곡’이란 표현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 ‘크로이처 소나타’도 이와 비슷합니다.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에 영감을 받아 1889년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가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다가 그 열정적인 모습에 아내를 의심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베토벤의 소나타에 대해 위험할 만큼 정열적인 작품으로 암시했습니다.

야나체크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이 소설을 표제로 삼아 쓴 현악4중주입니다. 그런데 이 곡 자체는 톨스토이에 대한 오마주(숭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야나체크는 톨스토이의 소설에 대한 반감을 담아 이 곡을 썼습니다. 당시 야나체크는 유부녀인 시테슬로바라는 여성과 연애 중이었으며, 톨스토이가 작품 속에서 결혼제도를 엄정한 도덕률로 얽어맨 데 대한 항의의 마음을 곡에 담았습니다.

야나체크의 이 곡은 베토벤의 소나타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프라하의 봄·1988년)’에 쓰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두 곡의 크로이처도, 톨스토이의 소설도 요즘 같은 봄날에 어울리는 열정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나체크의 시각이 지지할 만한 것이건, 아니건 말이죠.

유윤종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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