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슈베르트를 알아본 디아벨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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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음악가들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음악 거장들과의 친분으로 엮여 자주 나타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와 레스피기 등에게 걸작 발레곡을 위촉했던 디아길레프, 베르디와 푸치니의 성공에 큰 역할을 한 리코르디 등 공연 흥행사들은 특히 중요합니다. 리코르디는 악보 출판업자이기도 했죠. 출판업자를 꼽아보자면 베토벤과 슈베르트 시대에 활동했던 안톤 디아벨리(1781∼1858·사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토벤이 쓴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가장 먼저 기억됩니다. 그는 자기가 쓴 왈츠 주제를 당대 주요 작곡가 50명에게 주고 변주곡을 쓰도록 했습니다. 흘겨보자면 ‘돈으로 위세를 부린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베토벤은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진지하게 작업에 참여해 33개의 변주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불리는 1권이 되었고, 다른 작곡가들이 쓴 변주는 ‘디아벨리 변주곡 2권’이 되었습니다.

그는 무명 작곡가였던 슈베르트의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1821년 처음으로 슈베르트 가곡 ‘마왕’의 악보를 출판했고, 이후에도 계속 악보를 내 주었습니다. 슈베르트가 1828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을 때 그는 슈베르트 작품 대부분의 판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슈베르트는 점차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디아벨리의 출판사에 현금을 벌어다 주었습니다.

오늘 베토벤의 변주곡이나 슈베르트 ‘마왕’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전, 라디오에서 두 사람이 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인생의 폭풍우(Lebensst¨urme)’를 듣고 큰 인상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일찍 죽은 슈베르트도 예사롭지 않은 인생의 경로를 폭풍우에 비유했구나….”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이 멋진 제목은 슈베르트가 죽은 뒤 디아벨리가 악보를 출판하면서 마음대로 붙인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폭풍우’는 내달 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2015 서울 스프링축제-포푸리’ 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 제러미 메뉴인과 그의 부인인 한국 출신 무키 리 메뉴인이 연주합니다. 제러미 메뉴인은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의 아들입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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