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랩의 神, 라마를 영접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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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래퍼 켄드릭 라마 2집 ‘나비 착취하기’ 평단서 찬사 일색
인종차별 고발 등 사회적 메시지에 다양한 장르 망라한 발군의 음악성
“이만한 예술적 성취 없었다” 입 모아

‘이 미친 도시에 둘러싸인 애벌레는 고치를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다. …나비와 애벌레는 서로 전혀 다르지만, 사실 하나이자 같은 
존재다.’(‘모털 맨’ 중)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의 앨범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는 소설 ‘앵무새 죽이기’(투 킬 어 
모킹버드)를 연상시킨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이 미친 도시에 둘러싸인 애벌레는 고치를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다. …나비와 애벌레는 서로 전혀 다르지만, 사실 하나이자 같은 존재다.’(‘모털 맨’ 중)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의 앨범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는 소설 ‘앵무새 죽이기’(투 킬 어 모킹버드)를 연상시킨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피카소의 ‘게르니카’ 같다. 어둡고 강렬하며 복잡하고 폭력적이다.”(올뮤직가이드)

“야망 어린 시도가 담겼다. 한 세대에게 세상을 바꾸라고 촉구하는.”(힙합DX)

미국, 영국의 39개 매체 평점 평균 97점.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28)가 최근 낸 앨범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나비 착취하기)에 평단의 이례적인 극찬이 쏟아지고 있다. “21세기 클래식” “새로운 랩의 신”이라는 요란한 찬사까지 나온다.

2012년 메이저에 데뷔한 라마는 2013년 국내 힙합계에 ‘컨트롤 대란’ ‘디스전’을 촉발한 주인공이다. 당시 래퍼 빅 숀의 곡 ‘컨트롤’에 여러 래퍼 중 하나로 참여해 그는 짧은 랩 안에서 미국의 유망 래퍼들을 모조리 디스하며 미국 내에 ‘디스 대란’을 일으켰고 그 여파가 국내에까지 미쳤다. 전작 ‘굿 키드 매드 시티’(2012년)도 극찬을 받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또 다르다.

켄드릭 라마의 앨범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 표지.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켄드릭 라마의 앨범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 표지.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는 라마의 고향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 컴프턴의 빈민 사회에서 태어난 흑인을 애벌레에 비유하며 그가 나비 날개를 달고 성공을 꿈꾸지만 결국 시스템은 그를 성매매 여성처럼 착취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콘셉트 앨범이다. 음악적으로도 힙합 비트는 물론이고 재즈, 펑크(funk)까지 흑인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망라한다. 예를 들어 ‘포 프리?’에서 라마는 혼란스레 질주하는 스윙 재즈 리듬을 타고 놀 듯 피아노의 왼손 반주와 엇갈리는 매우 빠른 랩을 구사한다. 열여섯 곡이 담긴 앨범의 길이는 79분에 이른다.

전문가와 래퍼들은 이만한 예술적 성취에 도전한 래퍼는 근래에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김봉현 평론가는 “많은 젊은 흑인 래퍼들이 ‘랩으로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한 삶을 누리는 것’에 만족할 때 그는 힙합음악계에서 희미해져 가던 ‘가사의 예술성’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그의 앨범은 마치 ‘거대한 1곡’ 같다. 모든 수록 곡의 사운드와 가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주제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그의 앨범은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이나 비틀스의 음반처럼, 명반을 만드는 게 음악인들의 목표였던 때를 상기시킨다”고 했다.

음반 표지부터 논쟁적이다. 백악관을 배경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수십 명의 흑인이 술병이나 달러 뭉치를 들고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거나 쾌재를 부르고 있다. 그들 밑엔 의사봉을 든 이가 쓰러져 있다. 세 번째 싱글 ‘킹 쿤타’(QR코드)에서 소설 ‘뿌리’의 주인공 쿤타 킨테를 앞세워 미국 사회를 비튼 라마는 주요 곡 말미에 자작시를 읊는다.

강일권 웹진 ‘리드머’ 편집장은 “라마는 다중 은유와 언어유희 안에 개인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이를 흑인 사회, 나아가 미국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한다는 면에서 깊이가 다르다”면서 “신작에서 그는 여전한 인종차별과 최근 총격사건까지 다루며 작정하고 미국 사회 전반을 건드린다”고 했다.

라마가 읊는 시는 수록 곡이 진행되면서 두 줄, 세 줄, 네 줄 불어나다 앨범 말미에야 베일을 모두 벗는다. 그는 폐막 곡 ‘모털 맨’(12분 8초) 후반부에 전설의 래퍼 투팍(1971∼1996)의 생전 목소리를 등장시켜 가상 대화를 나눈다. 흑인과 미국 사회에 대한 혜안을 찾는 문답이 이어지고, 라마는 자신의 시를 투팍에게 들려준다. 문득 대답이 없어진 투팍을 부르는 라마의 목소리(“(투)팍? 팍? 팍?”)와 함께 앨범은 허망한 꿈처럼, 툭, 끝난다.

▼ 친절한 가사풀이와 해설… 랩 지니어스-힙합엘이 OK ▼

낯선 영어 랩 제대로 즐기려면


빠르게 흘러가는 한국어 랩도 알아듣기 힘든 판에 영어 랩이 뭐가 좋고 나쁘다는 건지 어떻게 평가할까. 전문가들에게 영어 랩을 즐기고픈 이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낯선 영어 랩의 이해를 도와줄 국내외 사이트가 여럿 있다. 해외 사이트 가운데는 ‘랩 지니어스’(rap.genius.com)가 독보적이다. 웬만한 미국 랩 가사를 다 검색해 열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사 위에 마우스를 대고 활성화된 부분을 클릭하면 가사에 담긴 이면의 의미나 역사적 맥락을 담은 주석이 나타난다. 2009년 예일대 재학생 셋이 재미로 만든 사이트인데 이제 나스나 우탱클랜 같은 유명 래퍼가 직접 자기 랩의 해설을 달기도 한다.

국내 사이트 중에는 ‘힙합엘이’(hiphople.com)를 추천한다. 새로 나오는 중요한 외국 힙합 가사의 한글 해석이 계속 업데이트된다. 영어와 한글 자막이 함께 달린 최신 뮤직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김봉현 평론가는 “랩에 많이 쓰이는 슬랭(속어, 은어)을 많이 익혀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면서 매일 새로운 슬랭이 등록되며 검색 기능도 갖춘 해외 사이트 ‘어번 딕셔너리’(urbandictionary.com)를 추천했다. 박준우 평론가는 “랩에 쓰이는 영어는 수능 영어, 토익 영어와는 많이 달라서 영어를 잘한다고 랩 가사를 잘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무턱대고 1990년대 랩 고전부터 파기보다 드레이크, 카녜이 웨스트 같은 요즘 랩을 들으면서 쉽고 재밌게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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