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고민은 결국 삶의 문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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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이 글로만 채운 건축비평 계간지 ‘건축평단’ 펴낸 사람들

“뜬구름 잡는 현학적 잡글이 아닌, 오늘 우리의 건축에 대한 현장의 고민을 담겠다.” 건축비평계간지 ‘건축평단’을 펴낸 함성호 이종건 서재원 씨(오른쪽부터).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뜬구름 잡는 현학적 잡글이 아닌, 오늘 우리의 건축에 대한 현장의 고민을 담겠다.” 건축비평계간지 ‘건축평단’을 펴낸 함성호 이종건 서재원 씨(오른쪽부터).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5년쯤 전에는 서울 대형서점에서 판매대 가득 놓인 건축 월간지 더미를 볼 수 있었다. 경기가 위축되면서 번드르르 한 건물 사진을 표지에 내세운 잡지는 구석으로 밀려났다. 이런 상황에서 사진 한 장 없이 활자로만 채운 건축 비평 계간지가 이달 초 세상에 나왔다. 까끌까끌한 표지에 고딕체로 툭툭 박아 넣은 제목은 ‘건축평단’. 중학교 교과서 속 사진에서 본 20세기 초 작가동인지를 연상시킨다.

‘망할 각오로 시작한 건가….’ 비평이 죽었다는 자조(自嘲)가 떠도는 시기에 “건축을 오로지 글로 논하겠다”며 정색하고 나선 까닭이 궁금했다. 창간 작업에 참여한 10여 명의 건축가와 비평가 중 3명을 9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이종건 주간=사진 게재?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건축에 대해 치밀하게 조직해낸 글의 가치를 공감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라 믿고 벌인 일이다. 10명만 넘으면 발간의 지속성을 불안하게나마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함성호 편집위원(건축가 겸 시인)=뭘 얘기하든 정한 주제에 대해 ‘끝까지 가보자’는 취지의 정기간행물이다. 어떤 지적인 이슈든 상업적 유행처럼 확 번졌다가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한 채 파도 쓸리듯 사라지는 세태에 작지만 유의미한 저항을 들이밀고 싶었다.

이=기존 건축지는 소재와 내용을 먼저 정해놓고 필자를 골라 요청했다.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 대한 글을 쓸 이를 건축가가 지정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렇다 보니 저널보다는 ‘광고판’에 가까워졌다.

서재원 aoa아키텍츠 대표=필자로만 참여했다. 창간호 주제가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와 ‘건축설계 교육, 이것이 문제다’인데 후반부 주제의 첫 글을 썼다. 한국 사회는 언젠가부터 ‘진지함’을 ‘나쁨’과 거의 동일시하고 있다. 대학 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온통 ‘재미’에 대한 강박뿐이다. 그래서 뭐가 남았나. 재미있는 실험과 진지한 성찰의 균형을 도모해야 할 때다. 더 많은, 더 진지한 글이 필요하다.

함=잘 정돈된 글이어야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동안 건축지에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글이라 할 수 없는 글’이 가득 실려 나왔다. 그런 잡지는 고 김수근 선생이 발간한 초창기 ‘공간’처럼 문화 전반을 아우른 소식을 알리기 위해 발간된 게 아니었다. 건설자본가의 홍보수단이었을 뿐이다. 유학에서 막 돌아온 젊은 건축가가 독자를 유혹할 미끼로 유용하게 쓰였다. 스스로도 소화하지 못한 얄팍한 관념적 언어가 나열됐다.

이=설익은 지식을 그럴듯한 표제로 포장한 글은 배제할 거다. 건축의 모든 고민은 결국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이다. 그 고민을 파고들어 감상을 넘어선 교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을 찾는다. 건축계 밖 인사의 글도 환영한다. 첫 주제는 그런 각오의 선언이다. 여름호 주제는 ‘건축가는 누구인가’로 정했다.

서=고료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쁘게 참여했다. 건축에 대한 건강한 담론에 목마른 건축가와 독자가 예상보다 많으리라 생각한다. 쉽지 않겠지만 혹시 광고가 들어와도 게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돈이 놓이기 시작하면 아무리 애써도 초심이 흩어질 거다.

함=동감이다. 좋은 글과 건축에 목마른 독자가 찾아오는 맑고 깊은 우물처럼 오래 남도록 힘을 보태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건축평단#삶의 문제#이종건#함성호#서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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