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전기기타-거문고의 파격 사운드… 國樂인가 ‘國락’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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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국악그룹 ‘고래야’ 2집
토속민요 가락-노랫말 현대적 재조립… 투전 뒤풀이에 랩배틀 결합도 신선

6인조 국악 퓨전 그룹 고래야. 우리식 유행가가 단절된 100년의 시간에 감히 다리를 놓으려는 무모한 도전자들. 왼쪽부터 김동근(대금, 소금, 퉁소), 정하리(거문고), 권아신(보컬), 김초롱(퍼커션), 옴브레(기타), 경이(퍼커션). 고래야 제공
6인조 국악 퓨전 그룹 고래야. 우리식 유행가가 단절된 100년의 시간에 감히 다리를 놓으려는 무모한 도전자들. 왼쪽부터 김동근(대금, 소금, 퉁소), 정하리(거문고), 권아신(보컬), 김초롱(퍼커션), 옴브레(기타), 경이(퍼커션). 고래야 제공
‘칠월칠석에 견우 직녀 빰칠만치 훤칠하고도 칠칠맞은 사람이 난데(7)/…허구한 날 방구석에서 구질구질 구차하구나/능구렁이로 살구 싶은데 욕구불만 노구로구나…(9)’(‘잘못났어’ 중)

비트는 오직 물바가지와 싸리빗자루 두드리는 소리로만 만들어졌다. 랩은 1부터 10까지 숫자 발음을 이용한 말놀이. 전기기타, 퉁소, 거문고가 다투며 난리법석이다. 스냅백(래퍼가 즐겨 쓰는 챙이 평평한 모자)과 망건, 북어와 선글라스가 영상에서 섞여든다. 흥겨운 반복구는 ‘커먼, 요(C'mon, Yo)!’로 들리지만 사실은 ‘거문, 고!’

6인조 국악 퓨전 그룹 ‘고래야’가 최근 낸 2집 ‘불러온 노래’는 유행가의 본질을 묻고 전통 해석의 새 가능성을 탐구한 역사적인 작업으로 평가할 만하다. ‘불러온 노래’의 ‘불러온’은 소환과 구전의 중의다.

고래야는 전국에 흩어진 토속민요 수천 곡에서 가락과 노랫말을 발췌해 재조립했다. 국악계 안팎에서 이런 작업을 한 건 이들이 처음이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에서 만난 멤버들은 “예를 들어 3번 곡 ‘아이고 답답’에는 경북 문경 논매는 소리, 상주 시집살이 노래, 구미 어사용(나무꾼 노래), 전남 고흥 시집살이 노래, 남제주 디딤불미(농사에 쓸 쇠를 녹이기 위해 행하는 거대한 풀무질) 소리를 얽었다”고 했다. 노랫말 ‘이번 달에 쓰는 돈이/다음 달에 갚을 빚이로구나’를 얹으니 노래는 신용카드 타령으로 변신했다. 그간 ‘태평가’ ‘창부타령’ 같은 통속민요가 민요의 대명사로 통했지, MBC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로 알려진 토속민요(지역별로 구전되는 민요)는 국악계에서도 박대됐다.

타이틀 곡 ‘잘못났어’의 콘셉트는 투전(화투와 비슷한 옛 도박)에서 가져왔다. “패를 내며 관련 숫자를 섞어 즉흥 말놀음하던 ‘투전 뒤풀이’가 랩 배틀과 비슷하다는 데 착안했어요.” 타악주자 경이(가명)와 관악주자 김동근이 랩으로 푸는 ‘이번 생은 잘못 났어!’에선 요즘 젊은층의 자조 어린 연애얘기가 들린다.

고래야는 돌연변이 집단이다. 국악 전공자가 과반수인데 2012년 록 밴드가 겨루는 KBS ‘톱밴드2’ 16강에 오르고 인디 뮤지션이 다투는 ‘CJ튠업’에서 우승했다. 지난해 7, 8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나가 현지 언론에서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얻어냈다.

판소리, 장구, 거문고, 대금을 전공한 4명의 국악도가 브라질 타악기 연주자 경이, 록 밴드 기타리스트이자 연극 음악 작곡가 옴브레(가명)와 손잡았다. “비슷비슷한 창작 국악 말고 다른 걸 해보잔 생각에 국악계 밖으로 손을 뻗어 경이와 옴브레를 영입했죠.”

김동근은 “대금에 밀려 국악계에서도 조명을 잃은 퉁소도 이번에 소환했다”고 했다. 잊힌 토속 생활악기인 물허벅(제주에서 물 길을 때 쓰던 항아리), 활방구(솜 부풀릴 때 쓰던 도구)도 고래야 앞에 불려왔다. 판소리를 전공한 보컬 권아신은 국악을 현대적으로 풀어 새 창법을 만드는 데 팔분 능선까지 간 것 같다고 했다.

이 혁명집단의 물허벅 연주와 투전 뒤풀이 랩은 26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여는 고래야 콘서트에서 볼 수 있다.(3만3000원·02-763-8233)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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