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프란치스코]가난한 영웅들이 뿌린 사랑의 씨앗, 꽃이 되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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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를 만든 사람들

충북 음성 꽃동네가 국내 최대의 사회복지시설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많은 이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다. 꽃동네 오웅진 신부는 꽃동네 회지(會誌)의 ‘7월에 드리는 편지’를 통해 지금의 꽃동네를 만든 ‘영웅’들을 소개했다.

충북 음성 꽃동네가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로 자리잡은 데에는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다. 사진은 고 최귀동 할아버지(왼쪽)와 오웅진 신부. 꽃동네 제공
충북 음성 꽃동네가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로 자리잡은 데에는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다. 사진은 고 최귀동 할아버지(왼쪽)와 오웅진 신부. 꽃동네 제공

첫 번째 영웅은 고 최귀동 할아버지(?∼1990). 최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당시 음성군 금왕읍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강제징용 됐다가 병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와 무극천 다리 밑에서 걸인생활을 했다. 자신도 불편한 몸이지만 밥 동냥을 해 병든 걸인들을 먹여 살렸다. 1976년 금왕읍 무극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오 신부는 최 할아버지를 만나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고 당시 가지고 있던 돈 1300원으로 무극리 용담산 기슭에 방 다섯 칸짜리 ‘사랑의 집’을 지어 이들을 입주시켰다. 이곳이 현재의 꽃동네 시초였다. ‘작은 예수’ ‘거지 성자’로 불린 최 할아버지는 1986년 2월 한국가톨릭대상을 받았다.

고 강국남 할아버지(?∼1991)는 ‘반공 포로’ 출신으로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로 어렵게 생활했다. 그는 주민들이 먹을 것을 주면 그 집 앞 청소를 하는 등 반드시 보답을 해 후원자 단체인 ‘꽃동네 모임’의 시초가 됐다. 홍승옥 할아버지(75)는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15년 동안 구걸해 모은 돈 100만 원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꽃동네에 기탁했다. 이를 계기로 12억 원의 돈이 모여 노숙인 생활시설인 ‘요한의 집’을 짓게 됐다.

오 신부는 1984년 12월 26일에 꽃동네를 찾아온 평신도 부부도 영웅으로 꼽았다. 한사코 신분 밝히기를 사양했다는 이 부부는 33년간 폐지를 팔아 모은 돈 983만 원을 자선사업에 써 달라며 맡기고 갔다. 이 돈은 심신장애인 요양원 건설의 밑거름이 됐다.

김인자 할머니(74)는 양손을 전혀 쓰지 못해 두 발로 식사를 하고, 발가락으로 십자수를 놓거나 종이학을 접는 중중장애인. 그는 자신보다 더 몸이 불편한 전신마비 환자(배영희 씨)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돌봤다. 김 할머니는 “인내란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게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무관심하지 말자”라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했다. 이 같은 고귀한 정신은 ‘꽃동네 장애인 학교’를 설립하게 만들었다. 오 신부는 “이분들 말고도 수많은 영웅이 꽃동네를 있게 만들었다. 꽃동네를 사랑하는 회원 모두가 영웅”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음성=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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