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인 ‘계수나무집’의 외관. 집 앞과 뒤의 높이 차를 활용해 지하에 주차장을 두고 동쪽에 널찍한 정원을 조성해 가로수 크기의 계수나무를 심었다. 주차장 위는 테라스인데 벽 쪽으로 심어놓은 남천이 겨울에도 붉은 잎으로 멋진 조경을 선사한다.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건축가 조남호판교신도시 집들은 대개 둘 중 하나다. 블라인드나 반사 유리창을 걷으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이나,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건물 외벽을 높이 쌓아 올리고 가운데에 마당을 둔 중정형 주택이다. 모두 담을 쌓지 못하도록 규정한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 때문에 생겨난 주택 문화다.
건축가 조남호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장(52)의 신작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계수나무집’(지하 1층, 지상 2층, 총면적 210.71m²)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으면서도 중정형 주택과 달리 폐쇄적이지 않다. 집 동쪽엔 주차장 대신에 꽤 넓은 정원을 조성해 가로수 크기의 계수나무 일곱 그루를 심어놓았다. 길을 가다 보면 개인 정원이 아니라 마을 가로수로 착각하게 된다. 판교에선 집과 길 사이에 현관문밖에 없다. 하지만 계수나무집에는 사랑방과 테라스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중간 영역을 형성한다.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면서 이웃과 교류하는 매개 장치다.
“한옥의 위계를 이용한 거죠. 사랑방이 집의 외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집과 바깥 사이에 중간 영역을 두자는 생각은 조 소장이 부부 미술가인 집주인과 판교의 단독주택을 둘러보면서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를 놓고 오랜 토론과정 끝에 이른 결론이다.
“판교에 집을 짓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마을의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각자 다른 재료와 형태로 지은 집들이라 기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어요.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판교보다 북촌 한옥마을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집 모양이 비슷하고 골목길을 공유하는 등 공유 언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에요. 개성이 강한 나만의 집을 짓기보다 이웃과 무엇을 공유할 것인지 고민해야 도시가 풍요로워지죠.”
널찍한 정원과 테라스는 대지 앞뒤의 높낮이 차 1.3m를 활용해 주차장을 지하화해서 얻은 것이다. 남향인 집 앞에서 보면 1층은 주차장이고, 거실은 2층에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철제로 덮어놓은 주차장 위가 테라스이고, 이 테라스에 면해 사랑방이 있다. 밖에서는 집 안이 보이지 않지만 안에 있던 사람이 사랑방을 지나 테라스로 나오면 길을 지나는 사람과 눈인사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외부로 열려 있다.
1층이 비어있는 공간임을 강조하기 위해 화장실을 벽에 붙이지 않고 원통형으로 설치했다(위쪽 사진). 거실보다 높게 만든 사랑방은 테라스와 연결돼 집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계수나무집은 회색 시멘트 벽돌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있지만 속은 목조 주택이다. 이 때문에 “애써 한옥으로 지어놓고 외부를 시멘트 벽으로 둘러싼 건 아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외부로 드러난 나무 기둥과 보는 집 안 분위기를 아늑하게 한다.
침실과 욕실, 드레스룸을 구획한 2층과 달리 1층은 비어있는 공간이다. 거실 식당 부엌을 나누지 않고 원룸처럼 하나의 공간으로 터놓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화장실도 벽 쪽에 붙이지 않고 거실 한쪽에 오브제처럼 원통형으로 설치해 전체적으로 1층이 빈 공간임을 강조했다.
“집주인의 생활에 변화가 있을 수 있고, 또 주인이 바뀌면 새로운 삶도 담아내야 하니 여러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집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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