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다고 사지절단? 소설로 끝나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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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료 문제 파헤친 日소설 ‘A케어’ 쓴 구사카베 요

마비 증세를 겪는 노인의 손발을 ‘폐용신(용도가 폐기된 몸)’으로 부르며 절단하는 끔찍한 시술이 이뤄지는 노인 클리닉을 배경으로 한 소설 ‘A케어’. 초고령사회 일본이 배경이지만 급속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노인 의료 문제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민음사 제공
마비 증세를 겪는 노인의 손발을 ‘폐용신(용도가 폐기된 몸)’으로 부르며 절단하는 끔찍한 시술이 이뤄지는 노인 클리닉을 배경으로 한 소설 ‘A케어’. 초고령사회 일본이 배경이지만 급속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노인 의료 문제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민음사 제공

손발이 마비돼 고통 받는 노인들이 쓸모없어진 자신의 팔다리를 잘라 달라고 아우성친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이 설정은 최근 한국어판이 나온 일본 소설 ‘A케어’(민음사)의 배경인 노인 클리닉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노인의료 문제를 통해 초고령사회 일본의 그림자를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는 이 소설의 작가 구사카베 요(久坂部羊·59·사진)를 e메일로 만났다.

작가는 오사카대 의대를 졸업하고 외과와 마취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현직 의사. 그는 과거 노인 클리닉에서 근무했을 때의 경험에서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제 환자 중에도 손발이 마비돼 ‘잘라서 편할 거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잘라 줬으면 좋겠다’고 하던 분이 계셨어요. 그런 분들의 고통을 줄일 방법을 생각하다가 순간 ‘절단’이라는 방법이 떠올랐죠. 물론 진짜 그럴 수는 없으니 소설로 써 본 겁니다.”

한글판 제목이자 소설 속 노인들이 받는 시술의 명칭인 A케어는 ‘절단’을 뜻하는 영어 단어 ‘Amputation’에서 따왔다. 일본어판 원제는 ‘폐용신(廢用身)’. ‘용도가 폐기된 몸’이란 뜻으로 사회적 쓰임을 부정당한 고령자들을 지칭하는 우울한 메타포다.

“물리치료사가 마비돼 못 움직이는 노인 환자의 손발을 ‘폐용지(廢用肢·쓸모없는 팔다리)’라고 부르는 걸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때 받은 충격을 반영하려고 제목으로 삼았지요.”

소설의 주인공은 노인병원 원장 우루시하라. 노인들의 고통과 이들을 돌보는 데 드는 간호력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혁신적 시술법(A케어)을 고안했지만 이 시술을 받은 노인의 자살을 계기로 언론의 비난을 받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작가는 한편으로는 헌신적인 의료인으로, 또 한편으로는 희대의 악마로도 보이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과 닮아 있다고 했다.

“호오(好惡)가 분명한 성격이나 극단적 발상을 하는 모습이 저와 많이 닮았어요. 소설이 없었다면 저도 A케어 같은 시술을 실제로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좀 으스스하죠.”

의사인 그가 만약 소설 속 환자의 처지여도 자발적으로 A케어를 원할까?

남에게 폐 끼치기를 꺼리는 일본인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그러는 편이 간호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니까요. A케어는 실제로 옷 갈아 입히기나 목욕 등을 시킬 때 간호효율이 높아지는 이점이 있죠. 물론 효율을 위해 수족을 자르는 것은 고령자의 존엄을 크게 해치는 일이니 그런 시술이 필요 없는 게 가장 좋겠지만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작가가 증가하는 노인 인구에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간호력의 한계를 의료현장에서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도 곧 직면할 문제다.

“노인 간병 수요가 공급을 지나치게 초과하면 A케어 같은 조치가 필요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상적인 노인 의료에는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필요한데 이를 실현하기란 불가능하거든요.”

작가는 이 소설 출간과 함께 의료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환상을 바로잡고 말기의료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 ‘일본인이 죽을 때’ ‘의료 환상’ 같은 의료 르포를 책으로 내기도 했다. 다음 장편소설도 병원이 배경이라고 했다.

“암 치료를 둘러싼 병원 진료과 사이의 암투가 주제입니다. 환자는 각 과가 암 극복을 목표로 협력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각 과는 경쟁과 이해관계가 숨어 있죠. 절반 넘게 썼는데 내년쯤이면 출간할 것 같습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구사카베 요#A케어#고령화 사회#노인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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