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신부 “활짝 열린 수도원… 오세요, 예수님처럼 맞을겁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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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수도원 이끄는 43세 ‘젊은 아빠스’

20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5대 수도원장으로 축복식을 마친 박현동 아빠스는 20여 년 전 수도원에 입회했을 때 하루 종일 논에서 유기농 벼농사를 짓고 기도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는 “일하다보니 생각이 아주 단순하고 행복해졌다”며 노동의 가치를 강조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20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5대 수도원장으로 축복식을 마친 박현동 아빠스는 20여 년 전 수도원에 입회했을 때 하루 종일 논에서 유기농 벼농사를 짓고 기도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는 “일하다보니 생각이 아주 단순하고 행복해졌다”며 노동의 가치를 강조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울릉도 출신 공대생은 아마추어 무선통신(HAM)에 빠져 수많은 잡음 속에서 지구 반대편과 교신하기 위해 애썼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수록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릴 적부터 과학자를 꿈꿨던 그는 대학 2학년 때 그렇게 수도자의 길을 생각하게 됐다. 1992년 경북대 응용화학과 졸업과 동시에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발을 디뎠다.

20일 오전 왜관수도원 대성당에서 축복식을 가진 박현동 아빠스(43)의 청년 시절 이야기다. 그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지난달 왜관수도원 제5대 수도원장(종신직)에 선출됐다. 아빠스는 ‘영적 아버지’ ‘영적 스승’이란 뜻으로, 베네딕도회를 비롯해 특정 수도회에 속한 자치수도원의 원장 칭호다. 당연직으로 북한 덕원자치수도원구의 자치구장 서리도 맡아 교회법상 교구장 주교와 동등하다.

수도원의 폐쇄적 이미지와 달리 그는 공대 출신답게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활발히 하며 ‘소통’과 ‘젊음’의 분위기를 퍼뜨리고 있다. 왜관수도원의 수도자 135명은 본원과 예속 수도원, 분원에 거주하면서 기도와 노동, 성경 독서로 수행한다. 수도자들은 출판사, 가구공예사, 식품업체, 유리화공예실, 농장 등을 자체 운영해 살림을 꾸린다. 19일 왜관수도원에서 박 아빠스를 만났다.

―젊은 나이에 아빠스로 선출됐는데 활동 계획은….

“뭔가 새롭게 하기를 좋아한다. 1996년 일반인이 들어올 수 없는 수도원 내 봉쇄구역을 소개하려다 아예 수도원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대기업 홈페이지도 제대로 안 돼 있던 시절 한국 가톨릭단체 최초로 만든 홈페이지였다. 어린 시절 8비트짜리 컴퓨터를 샀는데 아마 제가 울릉도에서 처음 개인용 컴퓨터를 산 사람일 정도로 컴퓨터와 친하다. 수도원 밖으로 나가 복음을 전할 수 없다면 안에서라도 인터넷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보수적인 수도원 분위기와 달리 개방적 성향을 지닌 것 같다.

“봉쇄구역을 제외하고 수도원 내 성당, 전시실, 정원 등은 일반인에게 언제나 열려있다. 베네딕도 성인은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고 했다. 외부인들이 수도원에서 기도하고 일하고 묵상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있는데 반응이 좋다.”

―수도원 밖 현대인들은 지나친 경쟁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수도원에선 일하고 있으면 기도하라고 종 치고, 기도 끝나면 또 다른 일하라고 종 친다. 뭘 좀 집중해 하려고 하면 종을 친다.(웃음) 그런데 사실 하는 일을 중간 중간에 끊어주는 것이 오히려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유지하게 한다.”

―북한 덕원자치수도원구의 자치구장 서리도 맡았는데….

“1909년 독일인 수도자가 서울에 한국천주교회의 첫 남자 수도원을 세운 것이 왜관수도원의 뿌리다. 이후 덕원(함경남도)으로 이동했다가 피난처로 왜관에 정착했다(북한은 1949년 덕원수도원을 폐쇄했다). 덕원수도원을 방문할 수는 없지만 깊은 유대를 느낀다. 15년 전 왜관수도원은 국제가톨릭의료봉사회와 함께 나진·선봉경제특구에 병원을 지었고 매년 약품을 지원한다.”

―외모가 준수한데 연애는 해봤나.

“대학 때 제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있었다. ‘부부 중 한 명만 군대 가면 된다더라. 내가 여군에 갈 테니 너는 군대 안 가도 된다.’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수도원에 들어오고서야 그 뜻을 알았다. 그렇게 둔했다.”

칠곡=신성미 기자savoring@donga.com
#박현동 신부#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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