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과 5일장에서 한국 정취 흠뻑 젖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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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번역학도들, 임철우 작가와 함께 정선-영월 문학기행

임철우 작가(왼쪽)가 17일 강원 정선 선평역에서 한국 문학 번역을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장편 ‘이별하는 골짜기’의 작품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별하는 골짜기’는 별어곡역과 선평역을 비롯한 정선의 간이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정선=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임철우 작가(왼쪽)가 17일 강원 정선 선평역에서 한국 문학 번역을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장편 ‘이별하는 골짜기’의 작품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별하는 골짜기’는 별어곡역과 선평역을 비롯한 정선의 간이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정선=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산골의 어둠은 일찍 찾아왔다. 첩첩이 이어진 나지막한 산들은 빠르게 음영에 휩싸였고, 능선을 따라 희뿌연 산안개가 넘실거렸다. 철커덩하는 기차 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가 빠르게 스쳐갔다.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강원 정선의 별어곡(別於谷)역에 서서 멀어져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소설가 임철우(59)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제 기억에는 승객이 타고 내렸던 기차역으로 남아있는데, 이제 더는 그렇지 않네요.”

임 작가는 17, 18일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 문학 번역을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 13명과 함께 강원 정선과 영월로 문학 기행을 떠났다. 임 작가가 2010년 발표한 장편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문학과지성사)의 배경을 함께 돌아보는 여행이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그린 이 소설은 한적한 간이역의 이미지와 맞물려 애절하게 읽힌다. 하지만 작가에게 창작의 동기가 된 별어곡역은 승객 감소로 2011년 무정차역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억새전시관으로 변해 역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별하는 골짜기’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더이상 이별의 공간이 아닌 셈이다.

전남 완도 출신인 작가가 강원도 오지인 정선, 그것도 간이역에 왜 매료됐을까. 외국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자 작가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제가 어릴 적 살던 고향에는 전기도 없었고, 마을에 바퀴 달린 것이 딱 하나 있었어요. 우체부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였죠. 열한 살 때 광주로 나왔는데 그제야 자동차도 보고 기차도 봤죠. 정선의 자연도 좋고, 기차도 좋아해서 이런 소설을 쓴 것 같습니다.”

임철우는 느림에서 여유를 찾는 작가다. 차를 운전할 때도 주로 국도를 타고, 기차는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좋아한다. 그런 작가는 한적하고 소박해서 좋았던 정선의 매력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별어곡역에 들르기 전 학생들과 찾은 정선 5일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정선 장은 옛날 모습을 점차 잃고 있어요. 예전에는 (현지인들이) 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와서 팔거나 바꿔가는 소박한 장이었지만 지금은 외지인을 상대로 한 상인들이 대부분이죠. 장에서 열린 공연에서 들었던 ‘정선아리랑’도 사실은 굉장히 흥겹게 불렀지만, 사실은 일종의 노동요입니다. 여자들이 밭에서 일하면서 힘든 일을 잊기 위해 주거니 받거니 부른 슬픈 노래죠.”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들은 번역원에서 운영하는 번역아카데미 5기 학생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에서 왔다. 지난해 가을부터 1년여 동안 한국 문학 번역을 공부했던 학생들은 작가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고, 이따금 한국어로 질문도 던졌다. 문학 기행의 느낌은 어땠을까.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4세 폴리나 최 씨(27)는 “장터나 간이역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작가님과 함께 소설의 배경을 둘러보니 소설을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온 소피 보우만 씨(25)는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이 외국에 많이 알려졌는데 노래로만 외국인들에게 다가설 수는 없어요. 노래를 잘 듣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문학으로도 다가서야죠. 언젠가 은퇴하고 나서는 (한국의) 어느 산골에 들어가 한 10년 동안 (한국)고전을 번역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정선·영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임철우#한국문학번역원#문학기행#이별하는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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