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간의 지옥, 냄새까지 느껴졌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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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공통 전염병 소개 소설 ‘화양28’ 집필 중인 정유정씨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이 5월 말쯤 새 장편을 낸다. 그는 “‘7년의 밤’보다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얘기를 준비하고 있다. 독자의 상상을 유발하기보다는 내가 창조한 가공의 세계에 독자를 넣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이 5월 말쯤 새 장편을 낸다. 그는 “‘7년의 밤’보다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얘기를 준비하고 있다. 독자의 상상을 유발하기보다는 내가 창조한 가공의 세계에 독자를 넣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정유정(47)은 약속 시간보다 40분 늦었다. 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이 벌겋다. “완전 멘붕(멘털 붕괴)이네요.” 신작 소설의 감수를 맡은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를 만나고 온 길. 출간이 코앞인데 소설에 무슨 일이?

2011년 3월 출간해 23만 부를 넘긴 베스트셀러 ‘7년의 밤’ 이후 정유정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가상의 도시 ‘화양’이다. 경기 의정부를 모델로 했다는 이 도시에 갑자기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이 퍼지고, 도시가 봉쇄된다. 29만 명에 달하던 시민이 3만 명으로 줄고, 도시를 탈출하려는 생존자와 막으려는 군대, 개와 사람의 생과 사가 섞인 28일 동안의 아비규환…. 2010년 12월 시놉시스를 쓴 이후 작가는 여태껏 ‘화양’에서 살고 있다.

“한 도시에 전염병이 돌면 감염자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격리된다고 우 교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어쩌죠.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해야 이야기 전개가 되지, 어디 갇히면 완전히 새로 써야 하는 거죠. 뭐 ‘눈먼 자들의 도시 2탄’도 아니고.”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작가는 기자를 앞에 두고 한숨과 열변을 번갈아 토해내며 신작을 설명했다. 200자 원고지 2500장 분량의 원고 중 그의 입을 통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인물과 사건들은 개성이 강했고 파격적이었다. 올해 최고 기대작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걸맞은 듯했다. 가제는 ‘화양 28’이지만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궁금한 독자를 위해 살짝 내용을 풀자면 주요 ‘인물’은 6명. 남자 수의사와 여자 신문기자, 119구조대 팀장, 링고, 여자 간호사, 소방공익요원이다. 링고는 수캐고, 소방공익요원은 사이코패스다. 이들이 화양이라는 ‘지옥’에서 얽히고설킨다. “소방공익요원은 짐승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이코패스죠.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터예요. 대리만족하면서 즐거워하면서 썼어요. 하하.”

작가는 결말까지 ‘시원하게’ 알려줬으나 “(광주 집에) 내려가 절반은 확 뒤집어 버려야겠다”고 말한 점을 감안해 소개는 않겠다. 그는 한두 번 더 고쳐 4월까지 원고 마감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5월 말쯤 책이 나오게 된다.

정유정의 작업 노트. ‘화양’시의 주요 도로와 철도를 비롯해 시청 병원 버스터미널 등이 거미줄처럼 그려져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정유정의 작업 노트. ‘화양’시의 주요 도로와 철도를 비롯해 시청 병원 버스터미널 등이 거미줄처럼 그려져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정유정의 소설은 이미지가 강하다. “냄새까지 느껴졌으면” 하는 게 작가의 욕심.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작가는 수의학과 응급구조대원의 이론과 실상을 공부했고, 세밀한 장면은 일일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가며 썼다. “수의사가 나오면 수술이나 검사 장면이 몇 개는 나와야 하잖아요. ‘동맥혈 산소 분압이 몇 이하면 기계적인 호흡장치가 필요하다’는 식의 문장들을 쓰려고 공부 열심히 했지요.”

작가와 함께했던 앞선 두 번의 술자리 생각이 났다. “담배 안 피우세요”라고 물었다. 그가 달게 피우던 ‘디스’가 생각나서다. 많게는 하루 네 갑씩 피우던 담배를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끊었다고 했다.(대신 전자담배로 갈아탔다.) 술도 안 마신다고 했다. 몸이 무척 안 좋았고, 지방간이 좀 있다는 의사 소견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건강이 괜찮다. 한국 문단의 모범생으로 우뚝 섰다”며 그는 깔깔댔다. 평소 체중보다 3kg ‘오버’라는데 얼굴에 살이 붙어서인지 전보다 인상이 부드러워 보였다.

“앞선 성과가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시원스레 답했다. “힘든 분야에서 위험한 도전을 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많이 팔리는 것과 상관없이 ‘이제 더는 못 써’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 있게 내놓는 게 우선이죠.”

‘저질이다’라는 말보다 ‘재미없다’는 말을 들을 때 더 마음이 아프다는 작가. “독서적인 즐거움이 있는, 쉽게 말하면 페이지터너(page turner·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는 책)를 쓰고 싶어요. 소설이 드라마, 영화와 경쟁하려면 재미있어야죠. 독자들을 밤새 붙잡아놓고 꼼짝 못하게 할 정도로.”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정유정#화양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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