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초기의 엽기-잔혹 동화들, 사실은 독일 전래 민담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31일 03시 00분


‘그림형제 민담집-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한국어판 출간

독일 민화를 집대성한 형 야코프 그림(왼쪽)과 동생 빌헬름 그림 형제. 현암사 제공
독일 민화를 집대성한 형 야코프 그림(왼쪽)과 동생 빌헬름 그림 형제. 현암사 제공
현암사에서 펴낸 ‘그림형제 민담집-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한국어판.
현암사에서 펴낸 ‘그림형제 민담집-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한국어판.
“‘얘야, 내가 너의 두 손목을 자르지 않으면 악마가 나를 데려가겠다는구나. 나는 겁이 난 나머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소녀가 말했다. ‘아버님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저는 아버님의 자식인걸요.’ 소녀는 두 손을 내주고 자르게 했다.”

무슨 엽기적 소설일까. 아니다. 그림 형제의 작품 ‘손이 없는 소녀’ 일부다. 형 야코프(1785∼1863)와 동생 빌헬름(1786∼1859)이 독일에서 전해내려 오는 민담을 묶어 1812년 12월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의 초판을 펴냈을 때 독일 부모들은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아이에게 어떻게 읽힐 수 있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잔인한 폭력성뿐만 아니라 과도한 성적 표현도 들어 있었기 때문.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그림형제의 작품은 대부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내용을 풀어내고 표현을 순화해 만든 ‘동화’다.

올해 ‘어린이와…’의 출간 2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그림형제 민담집-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현암사)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그림형제는 1812년 ‘어린이와…’의 초판을 펴낸 이후 개정 증보를 거듭해 1857년 최종판(7판)을 냈다. 문장이 유려해지고 문학성이 깊어진 최종판이 세계적으로 널리 읽혔지만 초기 판형들은 민담 원형에 가까워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번 기념도서는 각 판에 수록된 작품을 총망라했다. 모두 251편의 이야기가 1076쪽에 걸쳐 펼쳐진다. 이번에는 번역뿐만 아니라 편집과 디자인 작업도 성인의 눈높이에 맞춰 했다.

‘헨젤과 그레텔’ ‘라푼첼’ ‘개구리 왕자’ ‘브레멘의 음악대’의 이야기를 원문에 가깝게 읽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태껏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초역 41편이 추가된 것에 눈길이 간다. 초역 작품 가운데 하나인 ‘까마귀’는 우리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과 구성이 비슷하다. 동료의 배신으로 위기에 몰린 한 남자가 우연히 까마귀가 흘려 말하는 얘기를 듣고 횡재한다. 이 얘기를 들은 동료가 다시 그 까마귀를 찾아 갔다가 이번엔 화를 입는다.

국내 대표적 아동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김경연 씨가 번역을 맡았다. 1995년 동화에 적합한 내용만 발췌해 풀어낸 ‘그림동화’(전 10권·한길사) 이후 17년 만에 완역을 마쳤다. 김 씨는 “그림형제가 민담을 수집한 데는 당대 낭만주의 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민간전승 문학을 인류의 ‘모든 삶을 촉촉하게 적시는 샘’에서 나오는 ‘영원히 타당한 형식’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와…’는 초판본 1, 2권이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문서부문)에 등재됐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 공연으로 만들어지며 널리 사랑받고 있다. 비교적 높은 가격(4만5000원)이지만 그림형제의 팬이라면 구미가 당길 듯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그림형제#민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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